[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8화) 에세이-'장미를 닮은 그녀'
받는 것에 익숙했던 필자 사회생활하면서 편견 깨져 "더 큰 마음으로 다가가야"

"예쁘게 가위질 잘하는 사람? 나 좀 도와줄래?"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이런 부탁을 하면 항상 여자애들이 당첨됐다. 단체율동을 하거나 체조할 때도 여자애들을 선생님 옆에 세웠다. 여자애들은 뭐든지 척척 잘했다. 여자는 모범적이고 반듯했다. 반면에 남자는 가위질도 엉성하고, 춤도 못 추고, 조금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여자에게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운동도 못하고 왜소해서 친구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그럴 때 여자들이 '원식이 좀 그만 괴롭혀라'며 용기 있게 나서기도 했다. 나는 여자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받거나 동정받았던 것 같다. 그땐 여자들이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셌다. 나는 그런 호의가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짝사랑하던 애가 생겼다. 첫사랑이었다. 그 아이를 통해 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더 확고해졌다. 그 아이는 반장이었고 교지 편집부장이었다. 모범적이고, 착하고, 쓰는 단어 하나도 아름다웠다. 예쁘기까지 했다. 같이 버스를 타다가 빈자리가 하나 생기면 자기보다 나를 먼저 앉혔다. 엄마 같았다. 그 아이 옆에 있으면 내가 더 작아 보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여자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뭐든지 나보다 뛰어나고 이해심도 넓으니 여자들이 나를 챙겨주고 배려해줘야 한다고 믿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했다.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충분치가 못했다. 지친 그녀가 내게 이별을 말할 때도 나는 그녀를 원망만 했다. '어떻게 약한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그녀가 무책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되어서야 내가 여자를 보는 시선에 큰 변화가 왔다. 직장에서 친해진 여성이 있었다. 야근할 때까지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전 여자 친구는 화장하고 예쁜 모습만 봤는데, 그녀와는 어쩔 수 없이 일상적인 모습을 공유하게 됐다. 거리가 좁혀지자 의외의 단점이 눈에 띄었다. 책상이 지저분하다거나 머리 정리가 안 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사소한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놀라웠다. 여자에게도 실수나 오점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도 내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회복지 쪽에 있으면 운전하는 일이나 힘쓰는 일, 컴퓨터 프로그램 설치 등 여자들이 남자에게 부탁하는 일이 많다. 인간관계에서도 여자들은 미숙한 점이 많았다. 어느 날 그 친한 동료가 나에게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그때 여자에 대한 내 오랜 동경이 한 번에 무너졌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아팠다. '내가 여자들을 오히려 더 챙겨줘야 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 못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 무의식 속 깊이 숨어있던 여자에 대한 열등의식도 마주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비친 여자는 항상 강하고 화려한 존재였지만 사실은 '그런 척' 하면서 살고 있었단 것도 알았다. 그것도 매우 힘겹게.

여성이 물리적으로 힘이 약하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에서 파생되는 차별과 힘겨움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큰 약점으로 작용하는지 최근에야 절실히 깨달았다. 여성을 왜 사회적 약자라고 하는지도 알았다. 남자는 여자가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무력적으로 저항 못하는 여자를 상대로 온갖 욕을 해대는 남자들이 있다. 그것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인가?

나는 이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하다. 상대방 약점을 아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든 여성은 동화 <어린 왕자>의 장미와 다르지 않다. 행동이 서투르고, 얄밉고, 무심해도 내가 못 본 척하고 이해해줘야 한다. 여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거나 미워하지도 말고, 내가 더 욱더 큰마음을 가지고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같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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