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까지만 해도 남한에는 여우가 많았으나 1978년 지리산에서 한 마리가 잡힌 뒤에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소식은 토종 여우 부활과 소백산 방사로 유소식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2004년 3월 23일, 강원도 양구에서 토종 여우의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한국일보〉 '지평선' 칼럼 첫 대목 표현은 심금을 절륜히 울려주었습니다. '여우는 살아 있었다. 아니 죽어 있었다'!

교활한 요물 이미지로 굳어진 여우의 옛말인 '엿'에서 파생된 '엿다'와 '엿우다'란 말이 있습니다. 둘 다 '엿보다'의 조상말입니다. 그 엿보다 즉 훔쳐보다가 요즘은 몰래 찍고, 보는 관음으로까지 발전한 사회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토종 여우가 사라졌을 때도 어떤 여우는 살아 있었습니다. '몰카 여우'로도 살아 있었습니다. 그 여우는 소백산 아닌 창원 어느 여고 교실에서도 발견됐습니다. 그 '몰카 교사'의 꼬리 길이는 몇 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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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길면 밟힌다 했네

그 '몰카 여우'의 꼬리로

만들면 딱 좋은 게 있네

그건 바로 '꼬리 빗자루'!

'엿보다'

그걸 그 빗자루로

싹싹 쓸어 내다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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