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주민 희생한 통한의 역사
바로 알고 느끼는 역사 교육 절실

최근 제주 4·3희생자유족회 주최로 첫 발포지였던 제주시 조천읍 북촌 인근에서 2박3일간 체험일정이 진행됐다. 제주북초등학교, 관덕정, 박성내, 화북 환해장성, 4·3길 답사, 진아영 할머니 생가, 섯알오름 학살터, 일제강점기 알드르 비행장, 백조일손지지, 천백고지 고산습지, 어승생악 오름 탐방, 밤에는 강의 등의 프로그램이었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북초등학교에서 3만여 명이 1947년 제28주년 3·1절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민중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6명 사망, 8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 발단이다.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하여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했고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했다.

4·3사건은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컸던 사건이다. 50년이 지나도록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0년 1월 12일 제주4·3특별법이 제정·공포되면서 비로소 정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하면서 제주도민의 가슴이 조금씩 풀렸다.

당시 봉기세력과 제주도민들은 탄압을 중단하라는 요구와 함께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 결사반대"를 외쳤는데, 이 무렵 미국과 이승만 중심의 친일세력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고자 5·10선거를 추진하고 있었다.

김구와 김규식 등 민족지도자들이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가운데 재등용된 친일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 단체들이 나서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제주에서는 무장대가 일부 선거인 명부를 탈취하고, 도민들이 입산해 버리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두 선거구에서 선거가 무산되었다. 분단에 반대하는 민심의 표현이었다.

체험일정은 송승호 선생님의 상세한 안내와 양윤경 유족회장, 북촌에 거주하는 여러분이 부모형제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직접 이야기해 주면서 안타까움은 더했다.

1949년 1월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졌지만 무명천으로 턱을 가린 채 말도 잘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55년의 삶을 살다 2004년 9월 8일 세상을 떠난 진아영 할머니(일명 무명천 할머니)의 생가에 갔을 때 특히 그랬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영상을 다 보고 차에 오르니 비가 그쳤다. 그래서 일행은 할머니의 눈물이 비로 내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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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민간인 학살, 여수·순천과 광주항쟁과 같이 4·3도 금기의 역사였다. 희생자들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유족들은 숨죽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연좌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살던 마을 공동체는 불타 사라져 남은 사람들의 삶은 이중고통이었다.

이제 70년 아픔의 역사를 정의로운 청산으로 완수하고 불의에 항거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의 큰 흐름에 같이 했음을 우리는 바로 알고 가슴으로 느끼는 역사인식 교육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70주년 행사가 전국에서 열린다니 특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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