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작업 허가서' 어기고 1명 추가 투입해 산재 키워
송기마스크 미착용·안전교육 미이행 등 안전관리 부실

STX조선해양 폭발 사고 당일 잔유 보관 탱크(RO) 도장 작업에 3명만으로 허가 났지만, 임의로 1명이 더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노동자들이 다단계 하청구조의 맨아래인 '물량팀', 송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에 이어 허가 없이 작업자가 이동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 중대 산업재해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허가 없이 작업자 이동 = 지난 20일 '위험작업 신청/허가서'에는 RO탱크('R.O.TK') 작업 인원이 3명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이날 숨진 노동자는 4명이었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위험작업 신청/허가서는 허가대로 작업이 돼야 한다. 인원이 늘거나 추가 내용이 생기면 다시 작업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고 당일 물량팀장이 임의로 RO탱크 아래에 있는 슬롭(slop) 탱크에서 일하는 작업자 한 명을 RO탱크로 투입해 사상자가 늘어났다. 두 탱크는 같은 '물량팀' 소속이다"고 말했다.

이날 RO탱크에는 3명, 슬롭 탱크에는 5명이 작업 승인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RO탱크에서 4명, 슬롭 탱크에서 4명이 작업을 했다. STX조선 측은 "인력 조정은 작업 지시자 몫이다. 2명이 스프레이 작업을 하고, 1명이 보조를 하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보조 1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1명이 언제 작업 구역을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지난 20일 STX조선해양 선박 RO탱크 도장 작업을 위한 '위험작업 신청/허가서'. 애초 3명이 작업하도록 허가가 됐지만, 이날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4명이다. /금속노조

◇원청은 '물량팀' 왜 몰랐나 = STX조선은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이 1차 협력사가 아닌 재하청 업체가 고용한 '물량팀'인 줄 왜 몰랐을까.

STX조선 측은 1차 협력사인 ㄱ업체와 계약을 했고, 작업자 등록 시 ㄱ업체로 돼 있어서 ㄴ업체 소속 '물량팀'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STX조선 관계자는 "숨진 분들이 모두 ㄱ업체 소속으로 회사를 출입했다. 다른 회사 소속이라는 것은 이번에 사고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 노동자들이 우리와 근로계약을 하지 않았고, ㄱ업체가 우리에게 인력 신고를 해왔기 때문에 몰랐다"고 했다.

STX조선은 지난해 8월부터 ㄱ업체와 계약을 맺고 특수도장업무를 진행해왔다. STX조선은 "ㄱ업체는 지난해 8월 이전에는 배를 발주하는 선주사와 계약해서 우리가 만든 배 도장 일을 했다. 당시에 일을 잘해서 8월부터 우리 회사와 함께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데도 그렇다"? = 조선소 측은 지난 22일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동조합연대 측이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사고 당일 환기구역과 밀폐구역 감시자가 없었던 데 대해 "협력업체 인력이 밀폐구역 감시자인데, 사고 당일이 휴일이고 현장에 화기 작업이 없었기에 밀폐구역 감시자를 배치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또, '위험작업 신청/허가서'에 기재된 '환기 상태 불량으로 질식 또는 폭발 위험, 조명 상태 불량으로 충돌 위험'이라고 적힌 부분은 내부 포털 시스템 양식에 따라 생성되는 문구로,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도장 작업 시 공기를 주입하는 강제 급기 장치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외부 공기가 들어오게 돼 있어서 설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선소 측은 "도장 작업을 할 때 공기를 불어넣으면 작업이 안 된다. 페인트가 사방으로 날리기 때문이다. 원래 공기를 불어넣지 않고, 빼는 것만 있다. 공기를 불어넣는 것은 윗부분이 다 개방돼 있어서 자연 바람으로 한다. 가스를 빼내는 배기라인 2개가 설치돼 있었고, 정상적으로 배출 장비가 작동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안전보호 장치가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조선소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이라고도 해명했다.

송기 마스크, 정전기 방호 보호구 미지급에 대해서 "송기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은 게 맞지만, 실제로 복잡한 탱크에서 작업자들이 공기를 넣는 호스가 달린 송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 피복에 정전기 방지 장치가 안 돼 있는 게 맞지만, 다른 사업장도 우리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특별안전교육 미시행, 서명 위조 의혹에 대해서는 "ㄱ업체가 안전교육을 했다. 서명 진위는 경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STX조선, 대국민 사과 = STX조선은 23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장윤근 대표이사는 "회사는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을 깊이 통감하며 사고수습 및 보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한편,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관계당국이 시행 중인 특별근로감독 외에도 회사 자체적으로 공신력 있는 외부전문기관의 정밀안전점검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해 작업장 전체의 안전 저해 요소들을 즉각 제거토록 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STX조선 노동자들에게 대표이사가 담화문을 전했다. 장 대표는 "최근 몇 년간 큰 안전사고 없이 넘어왔다는 생각이 방심을 키운 것은 아닌지 너무 속상하고 죄스럽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현장에 대한 현장 조사와 특별감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이 경찰 수사를 지원하고,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지난 21일부터 2주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특별감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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