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유기축산 계란 생산하는 주영환 목사
"진정한 친환경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농민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전문적이고 촘촘한 친환경 인증·관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안전지대라 여겼던 친환경 인증 계란에서 살충제·농약 성분이 검출되자 충격을 받은 것은 소비자뿐이 아니다. 친환경 계란을 생산하는 양계농가도 안타까운 마음은 마찬가지다.

합천 삼가면에서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을 생산하는 한 농가를 찾았다. 산란계(알 낳는 닭) 약 4000마리를 키우는 이곳은 계란 파동 이후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농가는 무항생제 인증 농가여서 케이지(아파트식 닭장)에 사육해도 되지만 케이지가 아닌 평사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 중에서도 무항생제 인증 계란보다 요건이 좀 더 까다로운 유기축산 계란은 케이지 사육이 금지되어 있다. 이 농가는 400평 규모 축사를 11평으로 구분해 한 방에 산란계 약 120마리씩을 수용하고 있다. 양계사 지붕은 개방형으로 설치해 자연채광과 통풍이 가능하도록 했다. 인위적인 점등은 없다. 바닥에는 흙이 깔려 곳곳에서 진드기를 털어내고자 흙 목욕을 하는 산란계들이 눈에 띄었다.

합천 삼가면에서 9년째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을 생산하고 있는 주영환 애향교회 목사. /김해수 기자

판에 든 계란처럼 닭장 칸칸에 갇힌 산란계와는 건강상태도 달라 보였다. 마침 방문한 시간이 사료를 먹는 시간이었다. 한 방에 6개씩 설치된 사료통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사료를 먹는 모습이 꼭 개구쟁이 유치원생 같았다.

사료를 다 먹은 닭들은 축사를 둘러보는 기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멈춰 서 있기도 했다.

건강한 아이의 조건이 건강한 산모라는 공식을 대입해 건강한 계란의 조건이 건강한 산란계라면, 이곳 계란은 믿고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리를 옮겨 9년째 이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영환(50) 애향교회 목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 목사는 이번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한 친환경 인증 농가는 살충제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농가 주장이 사실이라면 풀어놓은 닭들이 살충제에 오염된 흙을 주워 먹는 바람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주 목사는 "다행히 우리 축사 앞 논은 친환경 재배를 하고 있지만 인근에도 친환경 양계장 바로 앞에서 농약을 치는 곳이 있다"며 "계란을 친환경으로 생산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그는 "결국 이런저런 조건을 모두 맞추려면 큰 비용이 들고, 농가는 부담을 줄이고자 필요한 절차나 조치를 생략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며 "인증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잘 갖춰놓으면 거기에 맞추고자 농민들 스스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주 목사는 아픈 일이지만 이번 사태를 똑바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처럼 항생제가 검출 안 되기만 하면 비좁은 닭장에서 사료 먹고 알만 낳는 닭이 생산한 계란이 정말 친환경 계란일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이어 "1차로 현재 친환경 인증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 마련을 해야 한다. 2차로는 친환경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자란 닭이 생산한 계란이 진짜 친환경 계란인지를 고민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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