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야>(1985년)에서 잊을 수 없는 춤을 보여줬던 미하일 바르시니코프가 그의 현대무용단 ‘화이트 오크 댄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 LG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펼쳤다.

무용평론가 로잘린 술커스는 그의 춤에 대해‘깎아낸 듯 분명한 초점과 명료함을 지녔고, 또 지적인 바르시니코프의 무용은 현대무용에 대한 통념을 초월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로는 이미 소개가 됐지만 53세의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 다시 그의 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날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3일간의 공연이 연일 매진될 정도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선보인 작품은 ‘The Argument’ 등 총 4편의 현대무용. 이 중 바르시니코프는 53세라는 나이에도 3개의 작품에 연속 출연하며 자로 잰 듯 정확한 몸짓과 안무가로서의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체중을 느끼지 못할 만큼의 가벼운 발놀림과 독무로 진행된 ‘Peccadillos’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연기는 웃음을 자아내었고, 각 작품마다 주제가 뚜렷이 부각되어 무용을 처음 대하는 관객들에게도 명쾌하고 쉽게 다가온 느낌이었다.

20세기 발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무용을 본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또 하나 놀란 것은 대기업이 문화사업에 눈을 돌려 만들어진 LG 아트센터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관람수준이었다.

기업의 경영마인드와 문화적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LG 아트센터는 곳곳에 2001년 기획공연 안내 팸플릿을 전시해놓는 홍보의 치밀함과 함께 로비에는 스탠드식 테이블을 설치해 공간활용의 극대화는 물론 관람을 앞둔 관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관객들 역시 그곳에 서서 적당한 목소리로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등 차분한데다 공연이 시작된 후에는 일체의 소리도 내지 않고 공연에 몰입하는 등 최선을 다한 춤꾼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개인공연이라고 해도 정작 그 춤꾼의 모습은 보기 힘들고, 소품들로 가득 채우는 공연, 여기에 학생동원이 관례적으로 이루어져 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지역의 공연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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