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빠진 가시적 인프라 확장에 치중
문화유산 활용 등 느끼고 머물게 해야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도보다 크기는 작지만 해안선의 길이는 오히려 더 길다. 제주도는 둥글넓적하여 해안선이 단조로운 반면 뜯어 놓은 수제비처럼 생긴 거제도는 바다가 들고 남이 아주 심하다. 섬의 면적은 제주도가 다섯 배나 크지만 그 펼친 해안선의 길이는 본섬만 해도 328㎞로 800리가 넘어 제주도보다 약 20㎞ 더 길다. 들고 나는 바닷가 산모롱이 돌아드는 곳마다 비경이 펼쳐진다. 하늘이 준 볼거리 여행지로도 최고이지만 근현대사의 아픔을 품은 유적이나 문화유산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서울서 네 시간 남짓 걸리는 조선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은 섬이다.

이렇게 조선 산업과 관광지로 잘나가던 섬은 최근 조선업이 주춤하면서 지역 경제에 붉은 불이 켜졌다. 그러자 지자체가 관광산업 육성으로 활로를 찾는다며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관광객이 제 발로 찾아오고 며칠씩 머물다 가면서 다시 올 것을 기약하게 할 가장 중요한 대책이 빠졌다. 눈에 보이는 관광 인프라 확장에만 치중할 뿐 여행의 질, 관광의 품격을 높이는 대책은 없다.

지난 휴가철 늘 거가대교를 이용하면서 지나는 금단의 섬 저도를 바다에서 보고 싶었다. 유람선은 3층 구조로 1층은 공연장으로, 2층은 객실, 3층은 전망 갑판으로 구성되었다. 출발 전부터 공연장에서는 현란한 조명이 돌아가고 시끄러운 음악이 고막을 찢는다. 해안 절경이나 푸른 하늘 담은 쪽빛 바다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유람선 선장이 안내하는 설명은 수박 겉핥기다. 마침 전망 갑판에서 사진 찍는 젊은이들에게 저도에 대해 물었더니 대통령 별장이 있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저도가 일제 강점기에 통신소와 탄약고로 이용되면서 원주민을 쫓아내고 출입을 통제하다가 박정희 땐 접근조차 못하게 하였다. 대통령이 저도에 오면 앞마을 유호리에 등화관제를 하고 주민들의 출어도 막아 부당불편을 겪어 온 지 반백 년에 이르렀다. 내 설명에 십수 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칠천량으로 돌아가는 뱃길 따라 내친김에 무료 안내를 자청했다. 원균이 부산 영도에 주둔한 왜선을 치러 나섰다가 퇴각하면서 왜군에게 1차로 습격받은 원래 지명이 영등포였던 구영, 황포를 지나 칠천량에서 패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에서 내리며 역시 유명 관광지라 전문 안내원이 설명해 주셔서 고맙다고들 한다. 나를 문화해설사로 아신 모양이다. 공연장은 배가 되돌아 정박한 후에도 한참이나 쿵작거렸다.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에서 하루를 지내면서 있었던 일이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서원 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큰 규모의 이층 누각이 낙동강과 병산을 마주하고 있다. 만대루라고 하는 누각의 이층 계단 입구에 문화재 보호를 위해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놓여 있다. 초등학생 두 녀석이 못내 오르고 싶어하더니 한 녀석이 친구에게 불쑥 묻는다. "넌 이게 왜 만대루라는지 아니?" 모른다는 친구의 대답에 "맘대루 올라가도 된다고 만대루래. 우리 올라가 보자." 우당탕 뛰어오르는 녀석들을 제지한 한 여인이 아이들에게 당나라 두보라는 시인의 시구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안동은 관광지마다 전문 문화해설사를 두고 예약제로 다양하게 체험 프로그램을 병용하고 있었다. 그 인원도 50명이 넘으며 타 도시보다 대우도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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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도 문화해설사 분들이 있으나 수적이나 처우 면에서 매우 열악하다. 많은 문화유산이 있으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장목진객사 뜰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거제 관아 질청은 빗장이 걸려 있다. 폐왕성에는 빈 건물터만 휑뎅그렁하고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꾸며 놓긴 했는데 진짜 유적은 농가 담장으로 이용한다. 거제 관광 산업이 피어나려면 보고 즐기는 여행에서 느끼고 머물고 싶은 여행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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