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판화 등 이념 초월한 작품 선봬

'당신의 얼굴을 빌려주세요'라는 이름으로 인물 사진 40여 개가 경남도립미술관 전시실에 내걸렸다. 분명히 같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앞면 모습과 뒷면 얼굴이 다르다.

재일교포 하전남 작가는 "내 정체성이 일본사회에서 희미해져 간다. 이러한 어색함을 남의 얼굴을 빌려 나타냈다"고 했다.

재일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광복절 특별전시 '세기를 넘어'가 경남도립미술관 4·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젊은 세대로 불리는 재일교포 3·4세대 중심으로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일본 각지에서 활동하는 작가 10여 명이 참여해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작품 80여 점을 내놓았다.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나타냈다.

하전남 작 '당신의 얼굴을 빌려주세요'

정유경 작가는 북한의 교육을 받았던 것에서 영감을 얻은 'For one and only country(하나만의 조국을 위하여)'라는 작품을 공개했다. 북한 선전 포스터를 인용해 선만 남긴 작업이다.

작가는 재일교포로서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작품활동에 첫 질문이라고 했다.

정리애 작가는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같은 듯 다른 초상화를 선보였고, 안도치카 작가는 '할머니' 이름을 단 옻칠을 입힌 소품을 선보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경제부흥의 역사 변화 속에서 또다시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누어져야 했던 그들은 창작활동을 통해 민족이라는 동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과 재외 교포들이 참가할 수 있는 '아름전'을 통해 주체성을 다지고 있다.

이번 광복절 특별전에서 이우환·곽인식(1919∼1988) 작가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1980년대 작품들이 5전시실에 전시됐다.

정유경 작 'For one and only country'

고 곽인식은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다. 일본 모노하(1960년대 일본의 급속한 경제적 부흥에서 피어난 아방가르드 문화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재일작가로서 길잡이 역할을 했다. 이 뒤를 이어 이우환 작가는 모노하를 의식적으로 구조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종효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재일교포 작가들은 다른 이념과 신분 속에서 창작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족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아마 유일한 소통방식이었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3일까지. 문의 055-254-4600.

이우환 작 'With W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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