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실망입니다." 아차 싶었다. 민망과 자책이 동시에 몰려왔다. 진해 장옥을 수소문(수상한 문화부 기자들이 만든 소소한 동네 문화지도)하러 찾아 나선 길, 정기원(84) 어르신은 "실망이다"고 했다.

그는 1958년부터 '황해당인판사'를 운영한 주인장이다. 황해당인판사는 일본식 목조 연립주택으로 창원시 진해구 중평동 장옥거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그곳에서 60년 가까이 사는 어르신은 그대가 진해 근대건축물을 보러 왔다는데, 보고나니 마음이 어떠한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심정으로 장옥에 사는지 이야기할 터이니 들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어르신은 오래된 책장에서 무언가를 꺼내 펼쳐보였다. 세월에 바랜 종이에는 'peace'라는 인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건설한 계획도시 진해, 벚꽃 뒤에 가려진 진짜 얼굴을 잊고 있었다.

최근 영화 <군함도>를 두고 실재와 허구 사이의 논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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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그만이었다'는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탄광을 가까스로 탈출한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김삼수(95) 옹의 증언은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지난 7일 자에 실린 그의 생을 쉽게 읽어내려가지 못했다. 현재 하시마 탄광에 강제 동원됐던 생존자는 단 6명이다.

이제 37명이 살아 계신다. 지난달 김군자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가운데서 37명만이 오늘 세계일본군 위안부기림일에 그날을 증언한다.

고백한다. 2017년 8월 14일 자 경남도민일보 18면 수소문은 망각했음을 깨닫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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