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한 책임] (5) 창원 안남중 학생들
'위안부' 할머니 돕고자 역사탐구동아리 중심 모금·기부·팸플릿 배포
"생각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시민의식 갖고파"

서명. 참여. 기억.

창원 안남중학교 학생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에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어른들은 광복 72주년이 되도록 강제징용, 원자폭탄 피해, 위안부 고통 등 어떠한 것도 바로잡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있었다"라고 짧게 언급하는 데 그친 중학교 3학년 교과서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정의는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니들은 우째 구경만 하노' 질책하는 김복동(92) 할머니의 일침은 어른을 향해 있는데, 청소년들이 나서고 있다.

창원 안남중학교 전교생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돕기를 하고 있다. 역사탐구동아리 KHIC(Korean History In Changwon)를 중심으로 지난해 7월 전교생이 참여해 나래울 팔찌(개당 2000원) 판매금 50만 원을 피해자 할머니 집수리 비용으로 후원했다. 11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후원금을 모아 111만 2370원을, 12월에는 카페 수익금 50만 원을 피해 할머니 생활지원금으로 전달했다. 올해는 학생들이 팔찌도 팔고 작은 소녀상 세우기 모금도 하고 있다. 114만 4800원을 모았는데 작은 소녀상 제작에 쓸 60만 원을 제외하고 정의기억재단 평화비 건립에 기부하기로 뜻을 모았다.

창원 안남중 역사탐구동아리 KHIC (왼쪽부터)정지연 회장, 강금자 지도교사, 서하린 학생회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알리는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역사탐구동아리 회장인 정지연(16) 학생은 지난해 새로 부임한 강금자 선생님(동아리 지도교사)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전에는 일제 강점기 하면 수탈-식민지-아픈 역사로만 배웠지, 이런 반인권적인 행위가 있었는지 몰랐어요.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해보자는 제안에 바로 동의했어요. 학교 교육주간을 통해 알리고 모금활동을 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 있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서 큰 힘을 얻고 있어요."

16살, 중학생들에게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에 닥쳤던 할머니들의 고통이 크게 와 닿았다. 전교학생회장이자 동아리 회원인 서하린(16) 학생은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후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했다. "수요집회에 몇십 년 동안 많은 사람이 동참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면서도 참혹해요. 집회에 참여하고 나서 '언젠가 해결되겠지'라는 생각이 '내가 뭘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로 바뀌게 됐어요."

팸플릿을 직접 제작해 거리에서 배포하고, 수요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고, 할머니들을 찾아가 손을 맞잡았던 아이들 눈에 행동하지 않은 어른들은 어떻게 비칠까?

지연 학생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응원하는 어른도 많지만 무턱대고 욕하고 야단치는 어른들도 있어요. '한일정부가 이미 합의했는데 왜 길거리에서 이런 걸 나눠주느냐'는 말과 이 시간에 공부나 하라는 눈빛은 무섭고도 충격적이었어요. 그분들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날은 가게에 들어가 팸플릿을 드렸는데, 받자마자 휴지통에 버리는 모습도 봤어요. 얼마나 힘들게 접은 팸플릿인데…."

하린 학생은 학교에서도 벽을 느낀다고 했다. "작년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나라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답답했어요. 교육공무원이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해 어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고,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은데 안타까웠어요."

지연 학생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친구들과 토의하면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교장선생님·교육청 허락을 받고 계획서를 제출해 보고해야 하니깐 빠지거나 방향이 달라지는 일도 있어요. 절차가 너무 복잡해요."

할머니들과 만남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위로였다. 병원에 입원 중인 김양주(93) 할머니를 찾은 학생들은 "너희에게 이런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지금 바른길을 가고 있구나'하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지연 학생은 어른이 되면 당당히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역사관과 시민의식'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하린 학생 또한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학생들에게는 어른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정말 해방된 걸까요?"라는 학생들 물음에 어른들은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끝>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