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안겨버린 곳
붉은 동백 없어도 초록 식물이 반긴 곳
파도 소리·나무 그늘 벗 삼아 걸어보네
일제강점기 아픈 기억 말끔히 씻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 간직하길 바라보네

외롭지 않은 섬. 지심도 선착장에서 받은 인상이다.

12월부터 피어 4월 하순께 꽃이 뚝 하고 통째 떨어진다는 동백나무가 빽빽하다.

거제 일운면 지세포리에 속하는 지심도는 동백으로 유명하나, 전부는 아니다.

소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 40종에 가까운 식물이 한데 사는 섬이니 외로울 리가 없다.

선착장에서 '동백섬 지심도 거제시 반환' 문구가 쓰인 펼침막이 반긴다. 청동 인어상과 지심도 반환 기념비도 보인다.

지심도는 1936년 일본 병참기지로 쓰이기 시작해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다가 81년 만에 거제시에 반환됐다.

잠자코 섰는데 수레 달린 오토바이 여러 대가 순식간에 선착장을 점령한다.

민박 손님 짐을 실어 나르려는 섬 주민들이다. 선착장 이외에는 대부분 경사가 급한 길이라 민박 손님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해맞이 전망대에서 원형 포진지로 향하는 숲길.

바다를 등진 기점에서 왼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길의 반환점에는 해안선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7월 지심도는 붉은 동백 꽃잎이 흐드러지게 깔린 길은 아니지만, 그늘이 있어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파도 소리와 나무 그늘을 벗 삼아 걸으며 뭍에서 따라온 고민거리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잠시 탁 트인 공간이 나오고, 일본식 단층 목조 건물이 등장한다. 지심도 전등소가 있던 자리다.

지심도 전등소는 포대 완공과 더불어 1938년 1월 27일 세워졌다. 전등소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 부속 건물로 이뤄졌다.

전등소는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했다. 밤에 적 함선을 탐지하려고 탐조등도 갖췄는데, 지름 2m에 도달거리가 7~9㎞가량이었다고.

전등소 소장 사택을 지나자 촘촘한 대나무 숲이 있고, 조금 더 걸으니 일본군 서치라이트 보관소가 나온다.

조금 떨어진 곳 바닥에는 서치라이트와 함께 쓰였던 30㎝ 높이 방향 지시석이 박혀 있다. 지심도 주변 지역을 표시한 돌이다.

6개 중 남은 5개는 각각 장승포, 가덕도 등대, 절영도, 일본 대마도 남단을 가리킨다.

해안가 해안침식절벽을 따라 해안선 전망대로 가는 길. 국기 게양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일본군 원형 포진지.

지심도 포대가 세워지고, 일본군은 포대 진지임을 알리고자 이 자리에 교쿠지쓰키를 달았다.

일장기 태양 문양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햇살을 붉은색으로 도안한 깃발, 욱일기다.

2015년 8월 15일 지심도 주민들은 이곳에 태극기를 걸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가 지심도의 아픈 흔적을 지워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안선 전망대에서 숨을 고르고 발길을 돌려 해맞이 전망대로 향한다.

탁 트인 공간에서 바다 냄새를 한껏 머금은 바람을 맞는다. 나무 그늘에서 호사롭게 걷는 기분과는 다른 해방감.

숲에서 섬휘파람새 경계음이 들린다. 지나가는 객임을 알리는 휘파람으로 몇 번 대응을 하자 경계를 풀고 노래를 부른다.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 휘파람새는 사육이 많았다고 한다. 그릇된 인간의 욕망이 분출된 까닭이다.

자연은 원래 그 자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의미가 있다. 반환된 지심도를 놓고 개발과 보존의 논쟁이 오가는 때, 후자에 마음이 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심도 절경인 해안침식절벽.

원형의 포진지를 둘러보고 다시 선착장.

한낮에도 컴컴하게 그늘진 동백숲에서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선착장처럼 트인 공간에서 비로소 해가 지고 있음을 인지한다.

그늘 덕에 편히 걸을 수 있었지만 여름 날씨 앞에 장사 없다. 온몸을 적신 땀을 식힐 방법을 찾다가 '에라 모르겠다' 바다로 뛰어든다.

시원한 바닷물에 안겨 생각한다.

하늘에서 보면 한자 '마음 심(心)'을 닮아 지심도라지만, 숲이 우거졌다고 '수풀 삼(森)'을 쓴 지삼도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동백섬이란 이름도 좋고.

이날 걸은 거리 1.8㎞. 5686보.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