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경·제시카 체라시 지음
어렵기만 한 현대미술? 한 발 더 가까이
작품 소개·현장 이야기·궁금증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길잡이'

교양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강의로 만들어 전하다가 본격적으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 지 2년쯤 되었다. 르네상스나 인상파 수업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작품과 작가의 풍요로움, 누구나 공감할 법한 아름다운 작품들, 작품마다 담겨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듣는 이 모두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서양미술사를 종강하는 마지막 수업, 현대미술에 관한 수업 시간은 '마지막'이라는 단어만큼 아쉬움을 남긴다. "현대미술이라고요?", "아~ 어렵네요", "아니, 어렵기 이전에 이해가 안 가요", "이게 왜 예술이에요?"

다양하고 기괴하고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가끔 상상은 해 본 적 있지만 그것을 기어코 끄집어내고 마는 현대미술작가들의 '아스트랄(astral)' 함에 기함을 한다. 현대미술사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이 여러 시간이 된다면 달리 가르쳐도 보겠지만 한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수업이라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다.

"다 이해하려 들지 말고 이런 것도 있구나, 일면식으로, 다음에 만나면 덜 당황할 수 있도록 조금 익숙해지는 정도로만…."

지난 2014년 8월 1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본태박물관에서 현대미술 거장으로 꼽히는 구사마 야요이 특별전이 개막해 내빈들이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 당시 구사마 야요이 작품으로 일본 나오시마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호박(Pumpkin)' 등 설치, 회화, 영상, 조각 작품 35점이 선을 보였다. /연합뉴스

서점에서 미술책은 한쪽 귀퉁이 신세다. 그중 현대미술 관련 책은 더 귀하다. 그래도 잘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책을 살펴보았다. 현대 철학과 맞물려 전달하는 책들은 안드로메다다.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제목을 어쩜 이렇게 콕 꼬집어 지었을까? 서양미술사 첫 수업 시간에 종종 듣는 이야기가 "제가 서양미술사는 처음인데요.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다. 초심자의 두려움과 낯섦을 담고 있는 문장이면서 또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친절하게(?) 가르치겠다는 저자의 의도를 볼 수 있는 제목이다.

책을 펼쳐 처음 만난 가나 출신의 미술가 엘 아나추이는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전형 같은 작가다. 지역 재활용센터에서 병뚜껑 수천 개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 작가가 설치방법을 정하지 않아 설치 장소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수도 있는 우연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장소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달라지다니? 병뚜껑으로 미술작품을 만든다고? 이런 의문은 당연한 것이지만 깊이 매몰되면 진도를 못 나간다.

지난 2014년 8월 1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본태박물관에서 현대미술 거장으로 꼽히는 구사마 야요이 특별전이 개막해 내빈들이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 당시 구사마 야요이 작품으로 일본 나오시마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호박(Pumpkin)' 등 설치, 회화, 영상, 조각 작품 35점이 선을 보였다. /연합뉴스

수많은 현대미술 작가와 그것보다 더 많은 작품의 단순한 설명식 나열이었다면 이 책의 매력이 덜했을 것이다. 다양한 작품 소개뿐 아니라, 미술관 이야기, 큐레이터, 딜러, 갤러리의 역할들, 예술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예술가로 거듭나는가, 퍼포먼스 아트, 미술관에서 작품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공공미술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이 작품은 왜 이렇게 비싼지 등등.

'ABCDEFGHIJKLMNOPQRSTUVWXYZ' 알파베티컬(alphabetical·알파벳 순서대로)로 하나씩 문장을 뽑아 현대미술의 미로를 하나하나 풀어 준 책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한국인 저자 안휘경과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제시카 체라시. 이론적이면서도 현장의 숨소리가 담긴 리얼한 숨소리가 느껴지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책이다.

미술도 낯선데 현대미술을? 쫄지 말고 믿고 이 책 한 번 읽어봐!

248쪽, 행성B잎새, 1만 5000원.

/이정수 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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