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생활 편리하지만 경쟁적·정서적으로 피폐
문명 이전 사회 사례 통해 현대문명 위기 해법 찾아 "전통·현대 장점 섞어야"

뉴기니 부족사회는 원시시대 생활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그 사회를 연구한 책 <어제까지의 세계>는 전통사회의 사법제도, 국가시스템, 육아, 노인문제, 종교 등 인류의 자산을 현대사회의 그것과 대비해 압축적이고 생동감 있게 설명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가 얼마나 경쟁적이고 정서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전통사회 아이들의 놀이는 경쟁이 거의 배제된, 마치 우리가 어릴 적 순수하게 소꿉놀이를 하듯이 항상 친구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눠주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작은 바나나를 줬을 때, 그것을 쪼개서 서로 나눠 먹기 놀이를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전통사회 아이들은 장난감을 직접 만들었다. 빈 캔으로 바퀴를 만들고, 나무 막대기로 차축을 만들어서 노는 모습에서 백화점에서 완성된 장난감만을 사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어른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또래 친구들뿐만 아니라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아이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노는 전통사회 아이들 모습은 지금 어딘가에 갇혀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다.

14살의 어린 나이에도 부모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는 전통 사회 청소년들의 조숙함은 놀랍다. 이와 비교해 우리 10대들은 사춘기를 맞아 고뇌하고 소외되고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전통사회 노인들은 그들의 경험을 존중받으며 그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 존엄성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 노인들은 경제적인 문제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 책을 접하고서 나에게 반문명적인 경향이 생겼다. 전통사회의 삶은 우리보다 훨씬 정서적으로 강하며, 우울증이나 강박적인 신경증도 없는 건강한 삶 같았다.

그들이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소소한 행복을 우리가 소파에 편히 앉아 패스트 푸드를 먹으며 가늠해보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 생각했다.

현대 사회는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손쉽게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낄 틈도 없이,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려도 되는 음식들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너무 쉽게 원하는 것을 얻으니 우리 마음속에 계속 공허함과 피폐함이 쌓여가는 것 아닐까?

물론 전통 사회의 삶을 무조건 동경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깨달은 점이다. 그들은 폭력, 전쟁과 환경적인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질병에도 쉽게 노출돼 있어 삶 자체가 많이 엄혹하다는 것도 알았다. 사실 그들의 삶을 동경하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삶으로 들어가라고 한다면 오래 버틸 자신은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작가가 원한 해답도 결국엔 전통사회의 장점과 현대세계의 장점을 섞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혜택을 충분히 받아 질병에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고, 노인들은 사회의 존경을 받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과연 그런 사회가 올 수 있을까? 아이들이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사지 않고 나무를 깎아서 장난감을 만드는 것을, 소비가 있어야지만 체계가 지속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과연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을까? 같은 학년임에도 학업 수준별로 반을 분리하려는 우리 현대 사회가 과연 연령 제한 없이, 아이들을 마구 뒤섞인 상태로 자유롭게 뛰어놀게 허락할 수 있을까?

작가는 사회적인 결단이 없이도 부분적으로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우리의 뼛속까지 침투해버린 자본주의 논리가 그런 역진적인 움직임 자체를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통사회의 여러 제도와 시스템을 현대 삶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그런 대단한 사회적 결단을 내릴 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새 문명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744쪽, 김영사, 2013, 2만 9000원.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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