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한 책임] (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37명 중 5명 경남에 비참하게 지내온 응어리진 삶
'우리 문제' 인식과 실천 필요

경남에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모두 5명이다. 하지만 5명은 알려진 숫자일 뿐이다. 더 많은 할머니들이 평생을 낙인 찍혀 자책하며 지금도 숨죽여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할머니들 잘못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 핵심은 '인권' =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과 성폭력 문제다.

1924년생인 김양주(93) 할머니는 마산에서 살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왔다가 중국 위안소로 끌려갔고, 1918년 통영에서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김복득(99) 할머니는 22살 되던 해에 '돈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 7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끔찍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치유도 되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시민모임 이경희 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우리 사회 인권을 바로 세운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창원 오동동에 세워진 인권자주평화다짐비도 '인권'과 '다짐'을 강조한 이름이 붙었다.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바라보는 시민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다짐'을 함께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소녀상' 명칭은 처음부터 꺼렸다.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시민모임 이경희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우리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김양주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병문안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이 대표는 "소녀라는 단어로 '일본 놈들이 우리 순결한 소녀들을 짓밟았으니 나쁜 사람이야'라고 인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문제로 연결된다"며 "그러면 자칫 우리 사회가 아닌 할머니들과 일본의 문제로 국한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결코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할머니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귀향 후 할머니들 삶 조명해야 = 이 대표는 강제 동원된 할머니들이 돌아온 후의 삶을 조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삶은 증언집·영화 등으로 기록됐지만 귀향 후 삶의 기록을 찾기 힘들다.

할머니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낙인 속에서 때때로 무차별적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스스로 '운이 없어서', '팔자가 세서'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238명은 신고 과정을 거쳐 정부에 등록된 숫자일 뿐이다. 북한에는 260명이 신고돼 있다. 생존한 37명 중 경남에 5명이 살고 있지만 김양주·김복득 할머니를 제외한 3명은 신상을 드러내기 꺼린다.

이 대표는 "할머니들이 정말 낮은 자존감으로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아왔다"며 "그분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해방 이후에도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 응어리를 함께 느끼고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국민 절반 이상 "위안부 미해결" =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일 국민 사이에서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크다.

지난달 21일 한국 민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싱크탱크인 겐론(NPO)이 발표한 '5차 한일 국민 상호 인식조사' 결과보고서에는 정부 간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는지에 대해서 한국인 75%, 일본인 53.8%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반면 "해결됐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19.5%, 일본인은 25.3%였다.

지난달 창원에서는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가 자전거 자물쇠에 묶이고, 꽃항아리가 파손되면서 지역사회가 공분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시민단체 '위안부 문제의 입법해결을 요구하는 모임'은 위안부 피해자 배상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를 시작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 협상과정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외교부는 올해 안에 최종 결과를 내고 공개할 방침이다.

이경희 대표는 "한일 합의에서 피해 당사자 의사를 배제했다는 것이 가장 큰 결격 사유이지 않나"며 "정부도 그것을 알고 있다고 보고, 그 문제를 공론화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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