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 정권 때 '기레기'전락한 기자들
부끄러운 세월 씻고 언론관 곧추세우길

정권이 바뀌었다 하나 우리네 살림이사 몇 달 새 무에 달라질 게 있겠는가. 청와대 앞길이 트이고 그네들 '사람대접'하는 품새가 예전과는 판이하고 대통령 내외의 소탈한 언동이 신선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지난겨울 백만의 촛불 인파가 얼어붙은 거리를 메운 대단한 역사가 있었지만 그래서 그 서슬 퍼렇던 권력을 옥에다 가뒀지만 그랬다고 하마 금방 개벽 세상이 올 턱이야 있을까. 동네가 홀방 잠기는 물난리에 잠근 수문을 열어도 강심에 엉겨 붙은 녹조는 끄떡도 없고 아스팔트 녹아내리는 땡볕을 받아 반도의 8월은 여전히 헉헉거릴 뿐이다. 곡절 끝에 겨우 꼴을 갖춘 새 정부의 내각이 밥값을 해 보겠노라 꼼지락거리는 것이 가느스름히 보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로 드러내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기고만장하던 중늙은이 두엇이 포토라인에 서서 볼멘소리 몇 마디를 사죄의 멘트라고 날렸을 뿐 '갑질'하던 놈은 여전히 갑이고 고달픈 '을'이 단박 그 처지를 벗어날 방도 또한 있을 리 없는 닭의 해 여름이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곳은 방송 쪽인 듯하다. 낙하산 타고 내려왔다 알려졌던 YTN의 사장과 EBS 사장이 제 손으로 사표를 냈단다. 그리고 YTN 해직자들이 복직하게 됐단다. 2008년 10월 이명박 정부가 선임한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하다가 해직된 지 무려 9년여 만이다.

그들의 복직 소식을 들으며 방송계 수난의 발화 시점인 이명박 정권 시작부터의 전개과정이 선연히 떠오른다. 복기해보건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을 걸면서부터 그 사람들 머릿속을 사로잡은 것은 오로지 '미디어'였던 듯하다. 조악하더라도 에두를 것 없이 말한다면 "민심의 향배가 정권의 지탱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이니 그걸 나냥대로 꾸리기 위해선 '언론' 장악이 필수다. 막강한 조중동이 이미 우군이니 거기 더해 매체 영향력에서 압도적인 방송마저 움켜쥐면 만사형통이다"라고 말이다.

대통령 취임 후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꽂으면서 시작된 이 시나리오는 KBS 사장 정연주를 제거하고 MB 심복인 이병순을 앉히면서 본격화된다. 광우병 사태를 빌미로 MBC의 PD수첩 제작진이 피소되고 이를 부당하다 '달려드는' 기자 PD들을 조져나갔다. 그리고 YTN에 이명박의 대선 특보 구본홍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니 이를 부당하다 저항하는 노조와 사원에 해고와 중징계로 맞선 것이다. 이 회귀적 언론 통제의 부활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MBC 사장 김재철 등을 통해 꽃이 피고 "위법이지만 무효는 아니다"라는 헌재의 애매한 결정을 업고 미디어법이 개정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나라 보수꼴통의 총아 '종편'이 탄생한 것이다.

종편은 개국 날부터 박근혜를 칭송하며 속내를 드러냈지만 조악한 콘텐츠와 질 낮은 편성으로 외면당했다. 그러나 선거전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권력기관이 정권에 유리한 정보를 흘리면 제도언론이 받아쓰고 종편이 해설하고 여당이 인용하는 순환구조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평론가'라는 후줄근한 이들이 둘러앉아 꾸며대는 '종일 편파방송'의 위력은 보수 정권의 승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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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란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도덕한 정권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한 매체의 턱찌끼로 연명하며 '받아쓰기'를 일삼던 기자는 기레기로 변했다. 그 민낯을 보여준 것이 '세월호'에서였고 그 푸른 청춘의 원혼들은 촛불로 환생해 세상을 뒤집었다. 지금 KBS, MBC, YTN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숨죽였던 양심과 기득권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 싸움을 구성원 스스로 겪어내길 바란다. 그래서 그 부끄러운 세월을 씻어내 바른 저널리즘이 곧추서는 전기가 되길 진정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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