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7) 하동 금오산과 형제봉
'하동팔경'이름난 금오산 탁 트인 바다 전망 펼쳐져
정상부 솟구친 '두 봉우리' 우애 깊은 형제처럼 보여
고소산성서 섬진강 두눈에 종주 땐 지리산 소유한 듯

<동국여지승람>에는 하동 지세를 '산을 지고 바다에 임했다'고 기록했다. 그 경치를 '한쪽 면은 넓고 넓은 푸른 바다와 닿았고 나머지 3개 면은 높고 높은 푸른 산이 솟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높고 푸름을 강조한 곳은 지리산이다. 하동 하면 지리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동 산은 지리산 그 자체이거나 모두 여기에서 이어진 산맥이다. 그러니 다른 지역의 웬만한 산보다 높지만 'OO봉'으로 불리고 있다.

지리산은 이미 '경남의 산' 첫 회에서 개괄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안타깝고 아름다운 산이 한둘 아니다.

모두 다 소개해도 모자람 없지만 지면 한계 탓에 머리를 싸매고 고심 끝에 형제봉과 금오산을 선정했다. 공교롭게도 이 산들은 모두 하동 8경에 포함된다.

두 산은 등산하는 재미 보다는 경치와 전망이 더 훌륭하다. 굳이 선정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모두 공감하실 것이다. 만약 모르고 계신다면 꼭 한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남해안 최고의 전망대

"우와∼ 금오산이 이런 곳이었어요." 같은 팀 이서후 기자의 감탄사다. 360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전망에 놀란 것이다. 아마 이때 내 얼굴에도 뿌듯한 표정이 흘렀을 것이다.

하동 하면 지리산과 섬진강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 이미지에 눌려 하동이 바다와 접해 있다는 것을 잊고 지낸 이들도 많을 것이다.

사실 높이로만 따지면 금오산은 1000m 이상 고봉 준령이 즐비한 하동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금오산 정상 풍경을 즐기는 가족.

하지만 금오산은 당당히 하동팔경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산과는 달리 시원한 바다 전망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오산은 하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북 구미, 전남 여수, 충남 예산, 경북 경주 등 다른 지역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감히 이들 산과도 비교해도 하동 금오산은 최고로 꼽을 수 있다. 역시 전망 때문이다.

금오산(金鰲山·849m)은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에 걸쳐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맥이 우산을 거쳐 한 번 높게 솟아 금오산을 형성하고 바다로 스며든다.

금오는 금자라를 뜻한다. 남해까지 달려온 백두대간이 바다를 만나 물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노적가리(수북이 쌓아 둔 곡식더미)를 닮아 소오산이라고도 하고 병목처럼 생겼다고 병요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상에는 해맞이 공원 전망대가 잘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 서면 왼쪽으로는 사천만, 정면으로는 남해, 오른쪽으로 광양만 바다가 쫙 펼쳐진다.

특히 사천 쪽으로 섬이 올망졸망하게 모여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한국화를 그리면서 먹물을 떨어뜨려 표현한 듯하다. 점점이 작은 섬은 바다 위에 부초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전망대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등줄기를 곧추세우고 요동치는 듯한 지리산맥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전망은 언제 봐도 좋지만 일출, 일몰, 월출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언젠가 꼭 한번 보고 카메라에 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날 전망대에서는 한 중년 신사가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면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그 멜로디는 산에서 느끼는 여유를 더 풍요롭게 했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 중에는 아흔 살은 돼 보이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넓게 펼쳐진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마 이서후 기자가 느꼈던 감동을 오래도록 가슴 속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등산은 진교면 중평리 하동청소년수련원에서 봉수대 석굴암을 거쳐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3㎞ 거리로 대략 2시간이면 가능하다.

차를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다. 산 정상에 있는 군사·통신시설을 위해 만든 좁은 길이지만 진교면 교룡리 평당마을에서 들머리를 찾아 오르면 20분가량이면 닿는다.

섬진강이 휘돌아 나가는 하동읍.

◇우애 깊은 형제산

형제봉(兄弟峰·1115m)은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지리산 삼신봉에서 이어진 산맥은 남쪽으로 관음봉을 거쳐 형제봉을 이루고 섬진강으로 빨려 들어간다.

형제봉과 관련한 표기는 옛 문헌에서 찾기 어렵다. 정상부에 약 200m가량 떨어져 솟은 2개의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투리로 성제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무더위에 조금이라도 쉽게 오르고자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한산사 옆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금세 땀이 온몸을 적셨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산 아래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체온을 떨어뜨리며 등을 살며시 밀어 주는듯하다.

대신 각다귀떼가 몹시 성가시게 한다. 유독 눈을 찾아 모이면서 몇 번이나 호수(?) 같은 눈에 빠진 놈의 시체를 수거해야만 했다.

오붓한 산길을 조금만 오르면 금세 고소산성이다. 600m 거리여서 대략 20분도 안 걸린 것 같다.

하동군 악양면 형제봉 고소산성 소나무 그늘에서 숨을 고르다. /유은상 기자

길이 800m, 높이 3.5∼4.5m의 고소산성은 가야성으로 추정된다. 안내판에는 <일본서기> 기록을 근거로 고령 대가야가 백제 진출에 대비하면서 왜와 교통을 위해 성을 쌓았다고 전하고 있다. 신라 또는 백제 때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지만 가야성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산성 가운데 자라난 소나무 그늘에 자리 잡고 숨을 고른다. 곧장 섬진강 물결이 굽이쳐 시야에 빨려 들어온다. 마치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염천 불볕더위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이만한 곳이 없다. '이곳이 천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상까지는 대략 5.5㎞로 3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등산로 주변에는 신선대, 통천문, 봉수대 등이 있어 산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상에 서면 이번에는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까지 확 펼쳐진 풍경이 한 앵글에 담긴다.

등을 돌리면 노고단에서 시작해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봉이 늘어서 있다.

종주를 한다면 2∼3일 걸리는 웅장한 산을 한눈에 다 담고 보니 지리산을 잠시나마 소유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뛴다. 바로 이것이 형제봉의 진가다.

소설 〈토지〉 배경이 된 악양들판.

악양들판과 평사리는 소설 <토지> 주무대로 유명하다. 형제봉 바로 아래 매계리는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대동지지>에서 청학동으로 지목한 기록이 나온다. 사람이 살기 좋은 이상향으로 봤던 것이다. 그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산을 올랐으니 다시 내려가야 하지만 '저 무덥고 삭막한 곳으로 어떻게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다시 발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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