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7) 하동 진산 구재봉과 지리산 봉우리
하동 진산 구재봉 번지는 노을 장관 연출
태평성대 믿음 쌓인 청학동 선종 사찰 쌍계사 위치
 

하동(河東)은 한자 그대로 강의 동쪽이다. 강은 하동 지리산과 전남 광양 백운산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섬진강이다. 하동은 경남으로 치면 서쪽이지만 한반도 전체로 보면 남부 지역의 중심이다. 지리산은 이 중심을 통해 남해와 만난다.

지리산이 남해를 향해 내달리며 여기저기 산줄기를 풀어놓은 것이 하동 산세다. 오랜 세월 풍화하며 넉넉해진 지리산 자락 아래 하동 땅 역시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읍치 따라 바뀐 진산

조선시대 하동 고을은 읍치(邑治·관아가 있는 고을의 중심)를 여러 번 옮겼다. 17세기까지는 현재 고전면 고하리 주변이 읍치였다. 이때 하동 고을 진산(鎭山·국가가 지정하는 고을을 수호하는 산)은 양경산(陽慶山·145m)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진산이라는 지위에 맞게 여러 조선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산 위에 태종 17년(1417년)에 쌓은 하동읍성이 있다. 읍치를 옮긴 이후, 원래 읍치는 구읍(舊邑)으로 불렸다. 마찬가지로 읍성도 고현성(古縣城)이나 고성(古城)으로 표시됐다.

임진왜란 이후 하동 고을 백성은 읍치 이전 논의를 활발하게 했다. 당시 왜군이 섬진강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기에 강 주변 마을 피해가 컸다. 읍치도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진주성이 함락되던 1593년 왜군은 하동 읍치까지 진출해 읍성을 불태웠다. 읍치는 폐허가 됐다.

정유재란 때도 왜군은 섬진강을 따라 올라왔다. 그래서 현종 2년(1661년)에 읍치를 섬진강 지류인 횡천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횡포(橫浦)로 잠시 옮긴다. 이는 현지 하동군 횡천면 횡보마을 주변으로 추정한다. 이때 진산은 옥계산(玉溪山)이었는데, 현재 횡보마을 북쪽에 있는 산인 것으로 보인다. 하동 고을 읍치는 숙종 5년(1679년)에 다시 구읍으로 돌아왔다가 교통이 불편하다는 등 백성의 요구에 따라 숙종 28년(1702년) 섬진강변에 있는 현 하동읍 주변으로 옮겨진다. 이후에도 읍치 자리는 몇 번의 변동을 더 겪는다.

하동읍으로 옮긴 후로는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구재봉(768m)이 고을 진산이 됐다. 구재봉은 지리산과 직접 산줄기가 맞닿은 산이다. 칠성봉(900m)과 능선으로 이어졌는데, 칠성봉은 다시 시루봉을 통해 지리산과 연결된다.

하동고을 진산 구재봉에서 섬진강과 악양들로 퍼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유은상 기자

구자산 정 장군 전설

구재봉의 옛 이름은 구자산(龜子山)이다. 적량면에서 보면 산이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습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혹은 산에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라는 설도 있다. 반대로 악양면에서 보면 산 모양이 비둘기처럼 보이기에 비둘기 구(鳩)를 써서 구자산(鳩子山)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재봉에는 정 장군 전설이 전한다. 고려 후기 구재봉에 정희령 장군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고려시대 정안(? ~ 1251년) 장군의 동생이다. 정안 장군은 13세기 최씨 정권 시절 최우가 집권하자 고향인 하동으로 돌아와 노모를 모시며 살면서 팔만대장경 제작을 주도하고 구재봉에 정안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다. 그의 동생 정희령 장군은 활을 아주 잘 쏘았다. 그가 타고 다니는 백마는 화살보다 빨랐다고 한다. 정 장군은 정말 백마가 화살보다 빠른지 알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 화살을 쏜 후 백마를 타고 달리며 화살보다 늦게 도착하면 목을 베겠다고 했다. 도착하고 화살이 보이지 않자, 화살보다 늦었다고 생각한 정 장군은 바로 백마의 목을 베었다. 그러고 나니 그제야 화살이 도착하더란다.

현재 구재봉은 악양들 건너편 형제봉과 함께 활공장이 있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해가 저물 무렵 구재봉 활공장에서 섬진강과 악양들에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도인 많은 삼신봉

하동 땅은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이다. 북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동서로 나란히 이어져 있다. 이 능선이 하동 땅으로 내리뻗은 줄기 사이사이에 명승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청학동은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이상향으로 옛 사람들은 지리산 속에 있다고 믿었다.

삼신봉(三神峰·1284m)은 하동군 청암면과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다. 삼신봉은 다시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으로 나뉘는데, 이 사이에 와이(Y) 자 형태로 형성된 골짜기가 있는데, 도인 신선도를 수행하는 삼성궁과 또 다른 도인들이 모여 살았던 청학동 도인촌이 이곳에 있다. 도인촌은 요즘 사람들이 청학동 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곳이다. 삼성궁에서 내삼산봉 자락 반대편 골짜기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는 대표적인 선종(禪宗) 사찰로 꼽히는데, 삼신봉 자락이 역시 훌륭한 수행처임을 증명한다.

삼신봉 자락에 있는 쌍계사는 대표적인 선종 사찰이다. /유은상 기자

하동군 화개면 덕평봉(德坪峰·1522m) 아래 산덕평마을이나, 악양면 청학이골, 불일폭포 부근, 세석평전 등도 옛 사람들이 청학동으로 손꼽은 장소다.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리산 주능선 중 영신봉과 삼도봉은 지리적으로 의미가 크다. 우선 하동군 화개면 있는 영신봉(靈神峰·1652m)은 영남지역 주요 산줄기 낙남정맥의 시작점이다. 이 봉우리에서 시작한 지맥이 남강, 낙동강을 따라 김해시 분산(盆山)까지 약 200㎞ 정도 이어진다.

역시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삼도봉(三道峰·1499m)은 경남 하동군과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에 걸쳐 있다. 이름 그대로 3도에 걸쳐 있어 삼도봉이라 부른다. 보통은 날라리봉으로 불리는 산이다.

금오산을 낳은 산줄기

하동군 남쪽에 우뚝하게 솟아 남해를 굽어보는 금오산(金鰲山·849m) 역시 멀리 지리산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금오산을 지리산과 연결하고 있는 산이 옥산(玉山·614m)과 이명산(理明山·570m) 줄기다.

지리산에서 가장 가까운 옥산은 하동군 옥종면과 북천면 경계에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진주편에서 진주 사람들이 가뭄을 만나면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듯, 예로부터 영험하게 여겨졌다.

옥산에는 지리산과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가 남도 명산은 지리산으로 모이라고 명했다. 진주 주변에서 제법 '폼을 잡고' 살던 옥산도 자신이 명산이라 생각하고 지리산을 향해 갔다. 그러다가 옥종면을 지날 때 샘에서 물을 긷던 처녀가 옥산을 보고는 산이 걸어간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놀라 옥산은 그 자리에 눌러앉아 버렸는데, 그대로 옥종면의 진산이 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진교면과 사천시 곤양면에 걸친 이명산은 옥산과 금오산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이 산에도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옛날 산 정상에 용지(龍池·용이 사는 못)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경주지역에 눈이 먼 이가 많이 태어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경주 사람들이 불에 달군 쇠와 모래, 돌을 용지에 집어넣자 용이 도망을 쳤다. 그러고 나니 눈먼 이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 문헌]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국토지리정보원, 2011)

<내고장 전통가꾸기>(하동군, 1983)

<하동읍지>(하동읍지편찬위원회, 2006)

<하동의 문화유산>(하동문화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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