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무용예술은 순수예술이 지닌 거리감을 허물고 생활예술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공간과 장소를 새롭게 생성하는 트랜스-로컬리티(trans-locality)를 시도하고 있다. 무용계의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는 최근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의미가 그저 단순한 위치를 넘어 인간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이자 방식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소 철학자인 이-푸 투안(Yi-Fu Tuan)과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역시 인간이 가진 존재론적 우위성은 특정 장소와 공간의 정체성을 통해 드러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포츠에서의 인종차별을 생각해 보자. 스키장과 아이스링크 같은 새하얀 공간에서의 인종적 배제라든가 각종 스포츠 경기장에서의 백인 우월주의 의식은 신체적 특성에 따른 우열검증이라기보다 지리적 영역확보를 통해 다른 집단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위가 장소에 투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무용 역시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면 에 공간과 장소를 통한 다양한 배제 행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백조의 호수나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 화려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흑인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결국, 인간의 존재론적 우위성은 특정 장소감(sense of place) 즉 '장소의 차별화'에서부터 발생한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인간에게 공간과 장소는 삶에서 그저 단순한 거주지의 개념을 넘어 개인의 욕망과 권력이 실현되는 복잡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로컬리티'(locality)의 국면에서 무용예술에 접근해 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간과 장소 속에 위치 지어진다. 그 위치에서 우리가 얼마만큼 애착과 의미가 있느냐에 따라 텅 빈 공간은 특정 장소로서 장소감을 형성한다. 그런 맥락에서 각 장소가 지닌 정체성은 지역성, 구역성, 로컬리티라는 이름으로 특수화 혹은 일반화되어왔다. 무용 역시 무대라는 특별한 장소를 통해 무용의 로컬리티를 구축해 왔다. 그 결과 춤은 소위 엘리트예술가들과 예술을 감상할 능력을 갖춘 일부 계층을 통해 향유되었으며 생활세계 교류공간이 아닌 생활 밖 특수한 장소로 거점을 옮겨 고급예술화되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예술성을 담은 이러한 특별한 장소감에는 독특한 감각들이 존재한다. 바로 초월성과 순응성이다. 특히 공간의 규모가 웅장할수록 우리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경외감에 빠지기 쉬운데 프레드 프레빅(Fred Previc)에 따르면 인간의 뇌 기제는 주변 공간을 감시하는 뇌 구조가 있어 자신의 신체적 거리를 크게 벗어난 공간, 장소일수록 추상적 사고의 뇌 기제가 활성화되고 도파민과 같은 흥분신경물질들이 분비됨에 따라 초월성이나 영성과 같은 신비주의적 체험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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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에서 강조했듯이 최근 무용계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공간과 장소감을 벗어나 트랜스-로컬리티 관점에서의 장소 변경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토슈즈를 신고 지하철에서 공연하는 발레리나와 거리예술 시즌에 선보이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은 '순수예술을 관람하려면 비싼 값을 지불하라'는 십계명을 해체한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결국, 무용의 예술적 가치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완벽하게 표현하는가의 우월한 결과중심주의 관점이 아닌 누구든 예술행위 주체가 될 수 있는 생활세계 속 장소체험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 교육현장과 사회에서 목 터지게 요구하는 창조적 인재 육성법이기도 하다. 이제 무용예술도 순수예술만을 강조하는 특정 계층, 특정 공간의 '공연예술' 문화에서 벗어나 '생활예술'을 획득하기 위한 문화적 지리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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