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노래교육연구회 '음하핫' 페스타
통영 용남초교서 '음악캠프' 노래 좋아하는 선생님들 모여
가사 쓰고 곡 붙이며 열혈 창작…제작 과정 SNS 공개키로

여름방학이다. 언덕 아래 멀리 통영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초등학교도 조용한 휴식시간을 맞았다. 그런 어느 날 학교가 소란스럽다. 이 학교 선생님도 아닌 어른들이 한두 명씩 찾아오더니 온갖 종류의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종일 교실 안팎을 채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달 29일 토요일 오전 11시. 용남초등학교 6학년 1반 교실에 스물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칠판에는 1조부터 4조까지, 한 조에 예닐곱 명씩 이름을 써놓았다. 조별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한다.

"저는 창원에서 왔습니다. 밴드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왔어요. 현재는 군인입니다. 휴가 받아 왔습니다." "고양에서 왔습니다. 아이들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뮤지컬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안산에 있는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악기도 작곡도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지난달 29일 통영 용남초등학교에서 열린 '음하핫' 페스타에 참가한 교사들이 조별로 만든 노래를 발표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교사들이다. 중학교 선생님들도 몇 있다. 이들은 몇 달 전 페이스북에 뜬 어떤 공지를 봤다. '음악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초대합니다. 2박 3일 동안 팀별로 노래를 만들어요.'

'음하핫' 페스타. 경남노래교육연구회가 열었다. 경남도교육청 행복학교 연구회 공모에 선정돼 2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이날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은 다큐와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노래와 함께 도교육청을 통해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공개될 계획이다.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석문 교사는 이날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아이들, 학부모,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나누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교사들 중에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통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을 것 같아요."

'음악으로 하나 되는 뜨거운(hot) 선생님들'은 그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전공도 나이도 학교도 다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교사라는 공통점 하나로 모인 이들은 마치 모두 오랜 친구 같다.

조별로 흩어져 본격적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다. 마감 시각은 오후 5시다. 다섯 시간 남짓하다.

지난달 29일 통영 용남초등학교에서 열린 '음하핫' 페스타에 참가한 교사들이 조별로 만든 노래를 발표하고 있다.

2조는 먼저 노래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의논한다. "진해 군항제 기간에 아이들과 시를 써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 시선은 어른들과 많이 달랐어요. 엄청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거기에 그대로 곡을 붙이면 좋은 노래가 되겠네요."

"3월 새학기에 선생님들이 겪는 고충이 있잖아요. 이름 외우기, 처리해야 할 서류는 많고. 이런 걸 노래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어디선가 벌써 노랫소리가 들린다. 옆 교실에 있는 1조다. 밴드활동을 하는 교사들이 각자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다른 참가자들이 자기 악기로 즉흥 반주를 곁들인다. 처음 만난 교사들이 멋진 화음을 피워낸다. "학교 이야기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선생님들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음, 예를 들면, 니들이 90년대 소풍을 알아? 이런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니들은 좋겠다 조회를 TV로 해서

에어컨 밑에서 앉아서 교장쌤 봐서

니들은 좋겠다 우리는 운동장에서

교장쌤 보다가 네댓 명 쓰러졌지

니들은 카톡하지 검색하지 노래 맘대로 듣지

편하게 버스타고 체험학습가지

우리는 전화했지 전과 봤지 라디오 녹음했지

한 시간 반 걸어가지 작년에 갔던 그곳

그래도 좋았다 해질 때까지 놀아서

골목길 누비며 마음껏 뛰어놀아서

우리도 좋았다 마주볼 수 있어서

따뜻한 손잡고 노래할 수 있어서

-'좋겠다' 중

3조는 벌써 가사를 완성하고 곡을 붙이기 시작했다. 신나는 곡이다. 노랫말이 어느 교사의 일기 같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아이들도 같은 생각일거야, 내일도 웃으며 출근해." "끝부분 가사는 출근해보다 만나자가 좋겠는데요. 내일도 웃으며 만나자."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자며 근처 카페로 나간 4조. 반편성을 소재로 가사를 쓰고 있다. 교사로서 겪은 서로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말썽을 많이 부린다고 소문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할 때 좀 다르게 느껴져요?" "그냥 저는 이 아이가 수업 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봐도 마음이 좀 달라져요." "내가 이 아이를 특별하게 본 것이지, 알고 보니 그냥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있죠.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구나."

곳곳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노래가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사고뭉치라고 했던 그 애

친한 쌤이 피하라고 했던 그 애

피하지 못해 피 볼 것만 같았던 그 애

근데 내 손에 뽑은 봉투에 있었던 그 애

그러다 문득 눈이 마주친 너의 얼굴은

그저 귀여운 어린 아인걸

-'반편성' 중

점심시간 이후 교실에서는 합주와 노래 연습이 한창이다. 조별로 연주를 해가며 음과 가사를 수정하고 구간별로 노래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가며 부를지, 어느 부분에서 어떤 악기를 어떻게 연주할지, 노래 완성을 향해 바쁘게 달려간다. 얼추 다듬어진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본다. 완주가 끝나자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하이파이브가 터진다. "와, 이제 랩 부분 가사만 조금 손질하면 되겠어요."

5시가 조금 지난 때. 다시 6학년 1반 교실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든다. 교실은 들떠 있다. 긴장보다는 파티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다. 한쪽에선 막바지 연습을 하기도 한다. 1조부터 발표를 시작했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다른 교사들은 박수와 미소로 뜨거운 공감을 보여준다. 선생님들이 만든 노래가 교실을 채우고 흘러넘쳐 방학을 즐기고 있을 학교 밖 아이들의 마음을 노크하러 달음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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