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 접한 장구의 매력에 빠져 풍물소녀 됐어요"

화려한 풍물 복장에다 짙은 화장까지 영락없는 풍물꾼의 모습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요청했더니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곧 익숙한 듯 꽹과리를 치고 빠른 장단에 맞춰 머리를 앞뒤에 흔든다. "얼쑤! 잘한다! 좋다." 추임새를 넣어줘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멍해진 귀 탓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하동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임채연 양은 '풍물소녀'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한 우리 가락에 심취해 9년째 한판 신나게 노는 풍물에 빠져있다. 우리 가락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임 양을 만나 또래 친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풍물에 빠지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하동 풍물패 '하울림' 소속…

앉은반 설장구, 꽹과리 연주에 두각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재미 삼아 장구나 북 등 타악기를 쳐 본 기억이 있을 테다.

임 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여느 아이처럼 유치원 발표회 때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장구를 처음 만져봤다.

'쿵따 쿵따쿵따 쿠궁쿠궁 쿵따쿵따….' 박자를 맞춰가며 공연을 시작했고,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보며 환호했다.

그게 계기가 됐다. 이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임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문뜩 장구가 떠올라 엄마를 설득했다.

하동에는 지역 대표 전통풍물패로 이름을 알리는 '놀이판 들뫼'가 있고,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하울림'이라는 풍물패가 있다.

임 양은 하울림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징으로 시작했는데 징을 치던 오빠가 졸업하는 바람에 꽹과리로 종목을 바꿨어요. 꽹과리를 잡은 지는 9년쯤 된 것 같네요."

541942_413671_1720.jpg
▲ 임채연 하동여고 학생. / 박일호 기자

풍물패의 막내로 시작한 임 양은 이제 어엿한 주전 에이스로 성장했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있긴 하지만 고등학생 중에서는 임 양이 최고참이다.

그러다 보니 1시간짜리 공연을 하면 임 양의 분량만 15분가량이 될 정도로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장구 장단의 진수를 보여주는 '앉은반 설장구'와 꽹과리를 주로 치는데 관객들이 호응을 해주면 정말 희열을 느껴요."

고등학교 입학한 임 양은 진로를 두고 잠시 방황하기도 했다. 취미로 풍물을 했으면 하는 엄마와 풍물에서 길을 찾겠다는 채연이가 한때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이라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풍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엄마를 설득했고,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어요."

제대로 풍물을 배우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레슨비에다 의상, 악기 등은 개인적으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방학이면 꽹과리 연주의 국내 1인자로 불리는 김복만 선생이 주최하는 연수에도 참가해야 하고, 그가 속한 '하울림'에서 진행하는 연수도 참가해야 해 웬만한 학원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비용 부담도 크다.

올해 전국국악대회 풍물부문 대상…

풍물 전도사 되는 게 목표

임 양은 연습벌레다. 매일 방과 후 연습장을 찾아 12시까지 연습에 매진한다. 얼마나 징을 쳤으면 쇠붙이인 징이 종잇장처럼 찢어져 버릴 때도 잦다고 살짝 귀띔했다.

꾸준한 연습 덕에 임 양은 각종 대회에서 꾸준히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 열린 대전 전국국악대회에서는 풍물부문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임 양은 풍물패 '하울림' 소속 회원들과 함께 중증장애 돌봄시설인 '섬진강 사랑의 집'을 찾아 재능기부활동도 하고, 주말에는 최참판댁이나 화개장터에서 하동을 찾은 관람객을 위한 공연도 매주 해오고 있다.

임 양의 꿈은 신명 나는 우리 가락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풍물이나 우리 가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터부시하는 편견과도 맞서 싸우고 싶다는 다부진 계획도 세우고 있다.

123.jpg
▲ 임채연 하동여고 학생. / 박일호 기자

1차 목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한예종에 입학하면 임 양은 '하울림' 소속 1호 한예종 입학자가 된다.

"지난해 졸업한 언니들이 1차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모두 2차에서 떨어졌어요. 제가 하울림 후배들을 위해 꼭 입학하고 싶어요."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에 다니는 선배들과 '풍물팀'을 구성해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우리 가락을 알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2년째 임 양의 담임을 맡은 하동여고 심진아 교사는 "지난해 언니들이 졸업하면서 풍물을 배우는 학생이 채연이가 유일하다"면서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도 학교에서 활발하게 지내는 걸 보면 애틋한 생각이 들면서도 꼭 꿈을 펼치길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루하다, 재미없다'는 세상의 편견에도 꿋꿋하게 풍물에 꿈을 실은 임 양이 부르는 청춘을 응원해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