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직원에서 CEO까지…병원 경영의 신기원을 열다

'절대 고수'의 탄생에는 뼈를 깎고 피땀을 흘리는 수련 과정이 동반된다. 무협지 속 절대 고수의 탄생은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봉인된 비책을 얻는다든지, '10년 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웅혼한 내력과 절륜한 기예를 얻었다'는 식의 한 문장으로 처리되곤 한다. 그러나 그 '10년 수련'의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며, 10년 수련을 했다손 치더라도 목표했던 경지에 오른다는 법도 없을 터이다. 무협지 속 세상이 각종 개연성 없는 우연이 중첩될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절대 고수의 탄생이 쉽지 않다는 걸 우회적으로 방증하는 게 아닐까? 손도수(70) 마산태봉병원 회장은 무협지 속 고수들이 그렇듯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창녕 남지'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탄탄한 중견병원 3곳을 경영하기까지 거쳐야 했던 '내공 수련' 기간을 짧은 글 속에 녹여내기는 어려울 듯싶다. 분명한 건 의사 출신이 아닌 병원 직원으로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갔다는 것이다. 암중모색했던 20년 수련 기간과, 그 힘을 '강호'에 창조적으로 접목시켰던 20년 경영 기간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쌓아 올린 내공의 정체를 가늠해볼 수밖에.

육군 3사관학교 출신의 군인이 병원 행정가로

손도수 회장은 최근 경남·울산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육군 3사관학교 출신으로 소령으로 예편했다.

그동안에는 병원 사업에 열중하느라 사실 다른 곳에는 눈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병원 전문 경영인으로서 적합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소신도 작용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품어왔던 '사회봉사'에 대한 철학이 있었고, 무엇보다 '재향군인회를 활기차게 바꿔보자'는 주변 지인들의 권유를 마다할 수 없었다.

"제 생활신조가 있습니다. 배우는 데 인생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나를 가꾸는데 3분의 1을 쓰고, 나머지 3분의 1은 베풀자는 거죠. 나를 가꾼다는 게 꼭 몸을 가꾼다는 게 아니고, 조직과 사회에 맞는 품격 있는 사람으로 맞춰 가야 한다는 그런 의미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손 회장은 재향군인회 회장으로서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부산·울산지역 광역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을 수시로 만나면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회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 참전국을 방문하는 행사는 회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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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도수 우암·승도 의료재단 회장. / 박일호 기자

Q. 군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우리 시대에는 직업이라는 게 한정돼 있었습니다. 공무원 아니면 군대를 간다든지, 공장으로 가는 식이죠. 저는 남지에서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누님 권유로 마산 창신고등학교에 다녔어요. 그런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뭘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학갈 형편이 안 되니까 친구 권유로 군대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군대도 좋다'는 말을 많이 할 때였죠. 70년인가 69년 말에 군에 입대해서 장교 생활을 했는데, 병과는 의무병과였습니다. 인제, 원통부터 해안까지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손 회장은 의무병과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면서 '병원 행정'에 눈을 뜨게 된다. 전후방을 오가면서 의무중대를 이끄는 동안 터득한 게, 의사만 병원 경영을 하라는 법은 없다는 거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일반화된 현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서서히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마산에 발령을 받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마산국군통합병원이었다.

마산국군통합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면서 손 회장의 병원 경영 구상은 더욱 영글어졌던 셈이다.

Q. 결정적으로 전역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계속 옮겨 다녀야 하니까, 가족과 함께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중령, 대령으로 진급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대하고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지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사업 추천을 받긴 했는데, 또 당시 사회 분위기는 노조 활동이 왕성할 때였습니다. 1986~1987년쯤이었으니까요. 그때 한 선배가 '자네처럼 군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이 곧바로 많은 종업원 거느리고 사업을 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취직을 하기로 했습니다."

손 회장은 군 복무 시절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마산에 있던 성모병원을 소개받는다.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마산 성모병원이 손 회장의 첫 직장이었다. 손 회장은 '여기서 딱 10년만 근무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름의 병원 경영 로드맵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였다.

성모병원 원무과에 10년 동안 근무하는 동안 병원 경영은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손 회장이 10년 근무를 마치고 퇴사하고 얼마 안 있어 성모병원은 문을 닫기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손 회장은 또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당시 병원 주인이 정치활동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분에게 배운 게 바로 그 하나였습니다. 병원 경영하는 사람은 절대 다른 거 하면 안 된다. 절대적으로 병원경영과 직원들만 생각하면서 가야 한다는 것을 새겼습니다."

태봉병원 인수로 병원 경영 첫발

Q. 병원 직원 생활을 그만두시고, 태봉병원(마산 진동)을 인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병원 건립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경북 쪽에 땅도 보러 다니고 했는데, 태봉병원 인수 제의가 오더군요. 원래 경영하시던 분 역시 경험이 많은 분이긴 했는데, 경영 방식이 제 생각하고는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 번 맡아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변 환경이 열악했죠. 처음에는 의사 한 분이랑, 약사 한 분이랑 동업했습니다. 그러다 의사 한 분이 빠져나가고, 다시 동업자를 찾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병원 신장 개원 직후에는 '전문경영인-의사-한의사-약사' 4인 체제로 경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손 회장으로서는 서로 다른 전문가 4인이 경영을 공동으로 하다 보니 의견 조율도 어렵고 정상적인 경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결국 손 회장은 엄청난 액수의 부채를 떠안고 동업자들의 지분을 사들인다. 승부수이자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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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도수 우암·승도 의료재단 회장. / 박일호 기자

"솔직히, 동업자분들이 나가실 때 '병원이 잘 되겠느냐'는 걱정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부채를 혼자 감당해야 하니까 그게 부담이긴 했죠. 하지만 제 방식대로 경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젊은 의사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죠. 그때 온 의사가 17년이 지난 지금도 근무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금 압박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병원을 경영하면 돈도 잘 빌려줬는데, 병원이 많이 생기다 보니 더욱 어려워진 거죠."

Q. 여러 가지 난관이 많았을 텐데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최고 경영 책임자가 되니까,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직원 월급 때가 찾아옵니다.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았습니다. 그때 태봉병원을 인수하고 나서 서울에 있는 모 경영연구소에 용역을 맡긴 적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좋겠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트라우마 극복 센터 같은 걸 함께 운영하면 좋겠다는 거였죠. 근데 저는 그게 아니라고 봤습니다. 언젠가 그 분야는 더 전문적인 큰 병원이 생길 거로 내다봤습니다. 요양병원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때 차별화를 위해 양·한방 협진을 도입하게 된 것이죠."

Q. 자신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요양병원은 많이 없었습니다. 주위의 시선도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기존 의사분들이 특이하다고들 많이 했죠.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뛰어들었습니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병원 경영이 되겠어?' 이런 식의 반응들이었죠."

Q. 태봉병원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병원의 성공 비법은 질 좋은 의사도 중요하고, 좋은 시설도 필요하겠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1년 내내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입원 환자들을 다 둘러봤습니다. 눈이 많이 왔을 때는 걸어서라도 병원에 왔습니다. 환자분들이 잠은 잘 잤는지, 의사들이 회진은 잘 돌았는지, 간호사들은 케어를 잘 해주는지 등을 하나하나 다 체크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불만도 나오게 됩니다. 그걸 또 고쳐 나가는 거고요.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나름의 신념이 있었고, 의사와 직원들한테 강조를 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식으로 직원들을 닦달하는 건 아니고요. 기본적인 조직의 기강은 있지만, 가족처럼 잘 대해주고 있습니다."

당시로는 얼마 없었던 요양병원으로 승부

손 회장이 태봉병원을 설립할 당시만 해도 요양병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후 10년 만에 요양병원 수는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경쟁자는 많아지는데 포괄수가는 오르지 않으니 병원 경영은 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 회장은 자신감에 기반한 승부수를 또 한 번 띄우게 된다.

마산 시내에 한 병원을 인수해 요양병원으로 탈바꿈하고, 진동 태봉병원은 일반 병원으로 전환하게 된다. 기존 진동 태봉병원에 있는 고가의 장비를 활용해 일반 병원으로 운영하면서, 교통이 편리한 마산 시내에 요양병원을 운영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때가 2007년이었고, 또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8년에는 마산 현동에 있는 시립 요양병원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시립요양병원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개인 사업자가 각각 3분의 1씩 투자하는 방식으로 세워진 민간위탁 병원이라 할 수 있다. 병원 터를 구입하고 건물을 올리는 건 손 회장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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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도수 우암·승도 의료재단 회장. / 박일호 기자

당초 150병상 기준이었던 걸 230병상으로 늘렸고, 치매거점 병원 인증을 받으면서 추가 병원 증축의 길도 열렸다. 150병상 기준으로 병원을 운영하게 되면 적자 경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손 회장이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손 회장이 1996년 경영을 맡은 진동 태봉병원은 일반병원으로 전환됐고, 마산태봉요양병원과 시립요양병원은 각각 250병상을 보유한 요양병원으로 운영되기에 이르렀다.

Q. 요양병원 시장 경쟁이 치열한데, 앞으로 또 닥칠 위험요인은 없겠습니까?

"우후죽순처럼 요양병원이 생긴 측면이 있습니다. 또 그만큼 노인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셈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아도 요양병원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나라에서 보건복지부 인증은 무척이나 까다롭습니다. 솔직히 제가 요양병원 처음 할 때 손 짚고 헤엄치기였다면 현재 정부 인증 기준 300개 항목을 다 받으려면 어렵습니다."

Q. 추가 병원 건립 구상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을 탈피해서 차별화하는 시도는 계속돼야 합니다. 물론 우리 지역에도 좋은 병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점은 받아들여 가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죠. 제가 마라톤을 오래 해보니까 알겠던데, 운동도 늘 하지 않으면 몸이 굳어서 못해요. 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쇠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항상 '여러분들이 일을 열심히 해줬기에 오늘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결국 저 혼자 한 건 아니라는 거죠."

"남을 돕는 데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태봉병원에서 잉태된 우암·승도 의료재단은 현재 진동태봉병원, 마산태봉병원, 시립요양병원을 거느리고 있고 임직원 수는 500명이다. 여기에 더해 '생명나눔 경남실천본부'를 통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Q. 앞서 병원 경영인은 병원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다양한 사회활동이 병원 경영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지 않겠습니까?

"재단 설립할 때 병원에 투자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있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원 사업은 사업이고, 남을 돕는데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직원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있고, 자발적으로 참여를 많이 합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긍지를 느끼는 거죠. 다른 병원 문화하고는 아마 많이 다를 겁니다."

Q. 경영이 어려웠을 때도 많으셨을 텐데 봉사 활동은 꾸준히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래도 가족들이 많이 나서줬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장인, 장모님, 처남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또 도움을 받게 되면 저는 빨리 해결을 해주니까,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거죠. 사위를 믿고 집문서를 맡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우리 집사람도 악착같이 생활했습니다. 진동 태봉병원 초창기에 병원 옆에 식당을 직접 운영했습니다. 지금도 신마산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합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언제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니, 그걸 대비해서 미리미리 준비해둔다는 차원인 셈입니다. 가족뿐 아니라 주식회사 다린의 김정수 회장님 같은 분 역시도 제가 어려울 때 선뜻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사정이 어려워 직원 월급도 못 주고 있을 때였는데, 도움을 요청했더니 두말없이 계좌번호 부르라고 하시더군요. 뭔가 통하는 코드가 있어서일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겠지만, 그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수많은 도움으로 성장했는데, 사회에 봉사하고 도움을 주는 걸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정치 활동에 대한 권유가 많을 법도 할 것 같은데요.

"조심하려고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없던 적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나쁜 말 나올 수도 있고요, 실제 나쁜 짓을 안 해도 나쁜 말은 나오게 돼 있습니다. 제가 하는 병원 사업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손 회장은 또 고향 '남지'를 위해서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향 초등학교에 역사박물관을 건립했고, 동네 노인정에도 빠짐없이 식료품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 무료 진료도 해준다. 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고향 초등학교에서 초청을 했을 때 손 회장은 학생 300명 모두에게 줄 학용품을 준비해갈 만큼 세심함도 보여줬다. 손 회장의 봉사활동을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짧을 정도다.

인터뷰를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오는 길, 엘리베이터 안에는 손 회장 명의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손 회장의 마음 씀씀이와 병원 경영 철학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건 없을 듯해 여기에 옮겨 적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암·승도 의료재단 임직원 여러분, 연일 맡으신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6월 4일 무더운 날씨와 휴일임에도 마산합포구청 광장에서 개최한 '6월 호국보훈의 달 기념 보훈가족 및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랑의 의료봉사' 행사에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전 임직원이 단결된 모습과 하나 된 마음으로 동참하여 함께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병원 임직원의 정성 어린 마음과 따뜻한 나눔의 손길은 의료취약계층인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 등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병원의 목표인 '국가와 이웃에 봉사하는 병원'으로 우리 임직원과 함께 지역민에게 봉사하는 병원으로 거듭 자리매김하겠습니다.

- 우암·승도 의료재단, 진동 태봉병원·시립마산요양병원·마산태봉요양병원 회장 손도수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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