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커피가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커피 시장의 팽창과 성장이 놀랍기만 합니다. 통관 수입량 기준으로 한국의 커피 수입량이 세계 4~5위권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순위 자체도 놀랍지만 인구수로 나눈 1인당 커피의 소비량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커피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의 한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커피는 고체의 분말 형태의 커피를 뜨거운 물에 녹여 설탕과 프리마를 첨가해 먹던 '다방커피'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커피분말, 설탕 그리고 프리마를 혼합한 소형 개별 포장의 형태로 등장한 믹스커피가 그 뒤를 이었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 곳곳에 등장한 커피자판기가 커피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한 아메리카노와 핸드드립 커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매우 드물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돈을 지불하고 물을 사 먹는 생수 시장이 활성화돼 있습니다. 과거에는 물을 사 먹는다는 생각이 희박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이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커피믹스로 대표되는 인스턴트커피를 대신해서 원두커피가 점점 커피 시장을 장악해 가는 것이 대세가 되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5월의 대통령 선거기간까지 한국의 정치 상황은 21세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역동적이고 변화가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현대사의 산물인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특정 정당이 영남에서 오랜 기간 기득권을 누려온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폐해의 정점이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의 고향 밀양의 어르신들은 오랜 기간 한결같이 박근혜 씨와 박근혜 씨가 몸담았던 정당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어 왔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대원칙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즉, 아버지의 이름과 유산만으로 대통령이 되는 전근대적인 왕조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여타 OECD 국가들이 각국의 시민혁명을 통해서 전근대적인 왕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폐지한 것과 달리, 대한민국의 왕정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끝을 맺었고, 식민지의 해방도 자체적인 역량보다는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던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컸다고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내면에는 주체적으로 획득한 시민 혁명적 요소에서 발현되는 진정한 민주공화정의 가치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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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왜곡이던 지역주의의 폐해이던 부친의 후광이던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고, 박근혜 씨 본인과 그녀 주변 측근의 부주의와 헌법 정신을 망각한 각종 스캔들로 인해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되어 대통령을 그만둔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는 고향 어르신들의 심정은 필자가 동의하거나 우호적일 수는 없으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에 역할을 잘 수행하고 경제를 부흥시키고 대한민국을 잘 사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굳게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 탄핵의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일 것입니다.

커피 얘기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이런 정치 얘기를 하는 것에 의아해하시는 독자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유는 바로 우리 커피 시장의 상황과 이를 인식하는 소비자들의 시각이, 맹목적으로 특정정당과 박근혜 씨를 지지했던 필자의 고향 어르신들의 정치 인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인스턴트커피가 처음 선보인 것은 6·25 당시 미군들이 즐겨 마시던 커피가 암시장으로 유통되면서였습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첨가한 아메리카노 역시 세계적인 체인망과 브랜드 인지도를 가진 미국의 유명 커피 체인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핸드드립 커피의 경우 이웃 일본의 문화를 고급스럽고 선진화된 것으로 인식한 일부 마니아층에서 이를 여과 없이 수용하면서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소비자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커피가 한국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한국의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커피 문화를 주체적으로,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커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준비가 부족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는 양적인 팽창과 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졌으니 질적인 발전이 필요하고, 미국과 일본의 스타일이 아닌 한국적인 커피 시장의 형성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봅니다. 보통의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커피의 맛은 탄맛과 거부감이 드는 쓴맛, 알 수 없는 텁텁함과 개운하지 못한 느낌 그리고 마시면 속이 편치 않게 만드는 맛일 것입니다. 필자는 젊은 시절 좋은 인연으로 다양한 국가를 여행할 수 있었고, 개별 나라의 많은 카페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20여 년 동안 경험한 다양한 맛을 종합해서 좋은 커피의 정의를 필자 나름대로 내려 보았고, 이러한 좋은 커피맛과 향이 미국과 일본과는 구분되는 한국 고유의 커피 문화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커피는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커피를 볶기 전의 생두 상태에서도 상큼하고 맑은 향이 풍겨야 하며, 커피마다 구분되는 고유의 향이 발현돼야 합니다. 커피를 볶는 로스팅 과정을 거친 후에도 고유한 특유의 향이 발현돼야 합니다. 커피를 추출하기 전 분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좋은 커피는 분쇄한 상태에서도 사람의 기분과 감성을 자극하며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고유의 향을 풍겨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아로마(Aroma) 치료 효과에 상응하는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로 추출한 후의 액체 상태에서도 고유의 향이 발현되어야 하며, 한 모금 마실 때에도 입안 가득 풍기는 맛과 수반되는 고유한 향미를 풍겨야 합니다. 더불어 하루에 몇 잔을 마셔도 속에 부담이 없어야 하며, 기상 후 공복 상태에서 마셔도 속이 편안하며, 손과 발에 열이 나며 땀을 흘리게 만드는 고급 차와 같은 효과를 내어야합니다. 또한 장복을 하게 되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오랜 지병이 치료되거나 호전되어야 하고,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수면장애에 별다른 영향이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커피는 마시는 개개인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커피 선진국 수십 개 국을 다녀 보았지만 위와 같은 커피의 맛을 구현하는 전문가와 카페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위와 같은 특징의 커피가 존재하며, 위와 같은 커피맛과 향을 구현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필자와 커피의 문화를 공유하는 밀양의 지인들은 위와 같은 좋은 커피의 맛을 구현해서 매일 매일 일상 속에서 생활 커피로 마시고 있습니다. 비록 필자의 경험에 기반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 얘기이지만, 커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 사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다음 호부터는 본격적으로 커피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저의 경험과 주장 그리고 생각을 읽어 보시고, 독자들이 판단해서 한국의 커피 시장이 지금의 상태 그대로 있어도 되는 상황인지,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커피의 근원적인 문제가 보인다면 2016년 말 수많은 시민들이 작은 손에 조금만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민주적 가치를 외쳤듯이 커피 시장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지 다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박근혜 씨와 영남지역에 기반을 둔 특정 정당에 대해 맹목적으로 지지하던 어르신들의 모습처럼, 유명한 외국계 커피 브랜드나 한국의 대기업 커피 브랜드 혹은 고가의 추출기계와 로스팅 기구를 갖춘 개인 카페들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맹신해 오지는 않았는지 독자들 스스로가 각자의 커피 생활을 한 번 점검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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