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운 상황의 연속, 야구기록의 매력"

야구는 기록 스포츠다. 어느 팀이 승리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몇 경기 출장, 홈런·도루·안타 몇 개 같은 것에 야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프로야구는 KBO(한국야구위원회) 기록원이 경기마다 모든 선수의 활약과 성적을 꼼꼼히 남긴다. 이 기록은 하나의 역사고 기록원은 야구의 역사를 쓰는 '사관'인 셈이다.

그렇다면, 경남 아마야구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누구일까. 김리원(33·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다. 3년째 경남야구소프트볼협회 공식기록원을 맡고 있는 그는 야구를 접한 지 겨우 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야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핵심적인 일을 하게 됐는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6년 전 처음 접한 야구

Q.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기록원이 됐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나요?

"야구를 본 지는 6년밖에 안 됐어요. 그전까지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전혀 몰랐죠.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2011년 4, 5월쯤 부산 사직야구장에 롯데자이언츠와 LG트윈스 경기를 보러 간 게 처음이었어요. 저는 타자가 공을 방망이에 맞히기만 하면 모두 안타인 줄 알았죠.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섰는데 외야 뜬공을 쳤어요. 경기가 끝난 거죠. 그런데 저는 그게 안타인 줄 알고 혼자 '와~'하고 환호했을 정도니까요."

123.jpg
▲ 김리원 경남야구소프트볼협회 공식기록원. / 강해중 기자

Q. 그날 경험이 야구에 입문한 계기가 됐나 보군요.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뜻대로 되질 않아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시기였어요. 친한 언니가 '야구장에 가보자'고 권했어요. 사직 가면 스트레스 많이 풀린다고. 재미있더라고요. 응원하는 게 신나고 남 눈치 보지 않고 춤도 출 수 있고, 고함도 지르고. 무척 좋았어요. 사실 그 날도 LG 선수 중에 잘생긴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 선수 보러 간 거였거든요. 그 선수가 이대형(현 kt위즈) 선수였죠. 이후 가끔 야구장에 갔어요. 그 시기에 창원에 NC다이노스 야구단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야구를 볼 거면 집에서 가까운 야구장으로 가야겠다 생각했죠. 그때부터 NC를 응원하게 됐습니다."

Q. 팬으로서 야구를 즐기는 걸로도 충분한데 어쩌다 기록원까지 하게 됐나요?

"우연한 기회였어요. 야구 보기 시작한 지 2, 3개월 정도 됐을 때였죠. 사회인야구팀의 매니저를 얼떨결에 맡게 됐어요.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 기록이라는 거예요. 룰도 제대로 모를 때라 당황했죠. '한 번 하면 제대로 하자'라는 성격이라서 인터넷을 뒤졌죠. 하루, 이틀 동안 야구기록법을 찾아서 달달 외웠어요. 그러고 나서 경기에서 선수들이 치면 치는 대로 안타, 2루타 기록했죠. 그게 기록은 처음이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기록이 아니라 '그리기' 수준이었어요. 기호만 그린 거죠."

Q. 야구기록원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네요.

"그때는 크게 부담이 없었어요. 대가를 받고 하는 게 아니라 매니저로서 해야 한다니 봉사 개념으로 하는 거였으니까. 매 경기 어설프게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어차피 하는 거 용돈 벌이나 하라면서 사회인야구 리그를 소개해줬어요. 이전에는 돈을 받고 하는 게 아니라 제 마음대로 해도 사람들이 고마워했는데 대가를 받고 하니까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그래서 야구기록 공부를 시작했죠."

KBO 전문기록원 과정 수료

Q. 본격적으로 기록법을 공부한 건가요?

"2013년이었어요. 거제에서 KBF(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 기록위원장이 기록법 강의를 한다고 해서 2박 3일 수업을 들었어요. 이듬해에는 KBO에서 진행하는 전문기록원 과정을 수료했고요. 이후에는 매년 KBA(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각 협회 소속 기록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 KBO 기록강습회에서 수업을 들어요. 1년에 한 번씩 들어야 안 잊어버리니까요."

Q. KBO 전문기록원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KBO 전문기록원 과정은 야구기록과 규칙을 중심으로 기록업무에 필요한 경기규칙과 야구기록법을 가르쳐주는 수업인데요. KBO 공식기록원과 외부강사진이 강의해요. 4주 동안 토, 일요일에 수업을 하는데 총 40시간 과정이에요. 과정을 마치면 시험을 쳐요. 거기서 기준 점수 이상이면 1급, 2급 등급인증서를 줍니다. 수강생들 사이에 바람이 불어서 따로 스터디를 하기도 했어요. 저는 운이 좋아서 첫해 2급을 땄어요. 작년에 롯데 장내 아나운서를 하면서 KBO 기록원들과 친분이 쌓였어요. 1급 도전해보고 싶은데 기록원 얼굴을 다 알아서 공부 안 하고는 못 가겠어요.(웃음)"

123.jpg
▲ 김리원 기록원이 작성한 야구기록지. / 강해중 기자

Q. 등급인증서가 있거나 선수 출신이어야 기록원을 할 수 있나요?

"아니요. 없어도 할 수 있어요. KBO 기록원 중에도 선수 출신은 많이 없어요. 심판은 100% 선수 출신이지만, 기록원은 대부분 비선수 출신이에요. 야구장에서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죠."

Q. 지금 현재 경남야구소프트볼협회 공식기록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게 됐나요?

"여기서 일한 지 3년 정도 됐어요. 사회인야구 리그 기록원을 할 때 심판 한 분이 경남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이었거든요. 어느 날 NC다이노스에서 주최하는 야구대회에 기록원이 올 수 없게 돼서 하루만 기록해달라고 부탁하셨죠. 그 일로 인연이 닿았어요. 올해는 협회에서 기록이사 직함을 주셨어요."

Q. 협회에서 주최하는 모든 대회에 기록업무를 담당하나요?

"고교야구 주말리그나 전국대회는 KBA 기록원이 담당해요. 저는 전광판 오퍼레이터 역할을 하고요. NC다이노스 주니어 스프링챔피언십이나 소년체전 예선전같이 지역대회에만 기록업무를 합니다."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기록원 활동

Q. 안타성 타구를 기록원이 실책으로 표기하는 경우 선수나 코치진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던데 그런 일은 없었나요?

"KBO 기록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중요한 기록을 앞두고 그런 일이 있어 선수가 방망이를 들고 기록실로 들이닥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어요. 안타와 에러를 결정하는 건 기록원 고유 권한임을 우리 지역 감독님들은 잘 아시고 인정해주세요. 또 사실 지역대회는 개인 성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너그럽게 넘어가는 일도 있겠죠?"

Q. 기록업무는 어렵지 않나요?

"한 번씩 모호한 상황이 발생하면 고민을 하게 되죠. 야구에서 똑같은 타구는 없어요. 비슷한 타구는 있지만 같은 경우는 단 하나도 없어요. 타자, 투수도 다르고 수비 위치, 환경도 다 달라요. 지난해 장내 아나운서로 KBO 기록원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웠죠. 이전에는 날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KBO 기록원들은 경기 전 풍향, 풍속, 날씨 등을 고려해서 안타나 에러를 결정하더군요. 예를 들면 플라이성 타구를 놓치는 경우 실책을 줄 수도 있지만 바람이 강해서 잡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안타로 기록하기도 하거든요."

123.jpg
▲ 김리원 경남야구소프트볼협회 공식기록원. / 강해중 기자

Q. 그래서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

"맞아요. 매번 새로워요. 어려워서 더 재미있어요. 완벽하게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금방 지루해질 수 있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모르는 게 계속 나오니까 야구 보는 게 더 재미있어요. 경기 중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선수들이 왜 저런 플레이를 했는지 생각해보게 돼요. 그리고 기록을 하지 않았으면 벌써 야구에 흥미를 잃었을지도요. 제가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거든요."

Q. 기록원이라는 역할에 보람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야구 기록원이어서 그런지 솔직히 프로야구보다 학생야구가 더 재미있어요.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그런가 봐요. 선수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어 교류는 없지만 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요. 그래서 이들을 프로야구 경기에서 보면 느낌이 달라요. 프로에서 다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언제까지 기록원 활동을 하고 싶은가요?

"야구를 남들보다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일이에요. 야구 보는 데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기록원의 수당은 경기당 지급돼요. 고교야구는 4만~5만 원이고 중학야구는 게임당 3만~4만 원 정도예요. KBO 기록원이 아닌 이상 직업으로 하는 일은 아니에요. 저도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고요. 지금 마음으로는 좋아하는 야구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