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가죽이 예술 작품으로 바뀌는 곳

가죽. 정의하자면 동물의 피부를 벗겨 가공한 것이다. 여기다 '공예'를 붙이면 가죽을 그 용도에 따라 가공·처리하는 것이 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가방, 지갑, 구두 등 다양한 형태로 탈바꿈한다. 최근 기성품을 넘어 직접 가죽을 가공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가죽공예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죽공예를 가르쳐 주는 곳을 '가죽공방'이라 부르는데 창원에도 많은 가죽공방이 있다. 그중 류상우(38) 대표가 운영하는 비슈누가죽공방이 눈에 띈다. 이곳에선 단순한 가죽공예는 물론 가죽에 염색ㆍ레이저를 입히는 기술도 배울 수 있어 전국에서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단순한 가죽이 예술 작품으로 바뀌는 그곳. 비슈누가죽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들기를 좋아했던 아이

처음 들어가 본 가죽공방은 신기했다. 입구는 바(BAR)와 카페 같은 느낌을 주는 소품들이 있었다. 이곳은 수강생들이 휴식을 취할 때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 공방 한쪽에는 장식품, 피규어 등이 진열돼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류 대표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흔히 '오타쿠'라고 하죠. 그런 기질이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오타쿠라고 하면 안 좋은 인식이 있는데 잘못된 거예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만 얻을 수 있는 호칭이죠(웃음). 정리하자면 남들 안 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뭔가에 푹 빠져 있었던 학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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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상우 비슈누가죽공방 대표. / 박성훈 기자

류 대표는 가죽공방을 하기 전 많은 일을 했었다.

"다양한 일들을 했습니다. 모텔, 인테리어, 프라모델, 시계 제작 등 대부분 손으로 만들고 제작하는 분야에 종사했죠. 사실 처음엔 취미 생활이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업으로 바뀐 케이스가 많아요."

이처럼 류 대표는 다양한 일을 하다가 7년 전 처음으로 가죽업계에 뛰어들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을까?

"시계 제작을 하다 보니까 가죽 줄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보통 메탈시계와 가죽시계가 있는데 금속보단 가죽에 계속 마음이 갔죠. 2015년에 본격적으로 가죽공예를 시작했고 2달 전에 창원에 가죽공방을 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창작"

블로그를 통해 작품들을 살펴보고 떠오른 생각은 '특이하다'였다. 많은 가죽공방들이 기성품을 모방해 만든 것을 판매·교육하는 반면 류 대표의 작품은 디자인, 색깔 등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제가 만드는 모든 가죽공예품은 창작을 위주로 합니다. 사실 창작을 한다는 거 자체가 창의성이 발달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호불호가 갈려요. 남들이 안 만드는 걸 기반으로 하니까 좋아하는 고객은 마니아층까지 형성돼 있죠. 가방을 예로 들면 보통 상단에 있는 지퍼를 열어서 개폐하잖아요. 그런 고정관념을 버리자는 겁니다. 또 수납공간도 기존과는 다르게 제작해 보는 거죠. 그래야 '나만의 가죽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느질과 마감이에요. 즉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소리죠.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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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는 류상우 대표. / 박성훈 기자

비슈누공방은 자체 제작한 작품 판매 외에도 수강생 교육을 겸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류 대표는 단순한 가죽공예가 아닌 특별한 염색·레이저 각인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가죽을 염색하는 방식 중에 '파티나'라는 염색법이 있어요. '금속이 녹슨다'라는 뜻인데요. 가죽에 금속이 녹슨 것 같은 색감을 염색으로 입힌다고 보면 됩니다. 이탈리아나 유럽에서 고급 수제 구두에 많이 쓰이죠. 문제는 국내에 이런 염색법을 아는 사람이 대략 10명도 안 된다는 겁니다. 하실 수 있는 분들도 대부분 공장에 계시니까 사실상 교육은 어렵다고 봐야죠. 공방에서 교육하는 사람은 국내에선 저밖에 없을 겁니다. 파티나 염색법이 가죽공예에 있어서 특이하고 까다로운 기술입니다. 작품을 거의 다 완성해도 조금 삐뚤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죠. 항상 긴장의 연속입니다."

서울에서도 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수강생이 찾아온다고 한다. 수강료, 자재비, 숙박비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류 대표는 현재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도 훌륭하고 좋은 공방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창원까지 오는 수강생들을 볼 때면 정말 행복합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요. 어렸을 때부터 피규어나 프라모델 만드는 걸 좋아했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주위 사람들이 봤을 땐 철없이 장난감이나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남들이 지적했던 '쓸데없는 짓'들이 가죽공예에 전부 접목돼 있습니다. 제가 염색에 강한 것도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염료에 대해서 공부한 덕분이고 창작을 하는 것도 인테리어를 하면서 캐드, 디자인을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지금은 공방도 크게 하고 수강생도 많으니까 주위에서 인정을 해줍니다.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까 뿌듯하고 행복한 건 사실입니다."

하나의 품목만 선택해서 제작하라

비슈누가죽공방 한쪽에는 류 대표가 제작한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가방부터 지갑, 키홀더, 담배 케이스 등이 벽면을 빼곡히 채웠다. 그중 어떤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갈까?

"답변부터 하자면,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죠. 제 작품의 기본은 창작이니까 저 스스로도 매번 특이한 것을 만들어 봐요. 공방을 차린다고 끝이 아닙니다. 수강생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제작을 해봐야 습득한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할 수 있죠. 새로운 염색법도 써보고 설계도도 특이하게 그려보는 거죠. 모든 작품이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겁니다. 정말 하나하나가 자식 같고 소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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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중인 류상우 대표. / 박성훈 기자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망치질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잠시 작업장을 엿보자 수강생들이 가죽을 붙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진지하고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류 대표에게 수강생들의 연령대와 선호하는 제품군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다른 가죽공방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젊어요. 대부분이 사업이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니까요. 지갑, 가방 등 모든 품목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는데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제작해도 핸드메이드는 기성품과 명품 사이의 금액대로 맞춰서 판매해야 해요. 작업자 입장에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동반되니까 그에 상응하는 금액으로 판매하고 싶죠.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선 너무 비싸면 차라리 명품을 사는 거죠. 때문에 우선 '하나의 품목을 선택해서 제작하라'고 강조합니다.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품목부터 제작·판매를 해보고 인지도를 쌓아서 더 크게 나가는 게 올바른 방법이죠."

가죽공예를 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스타일과 작업 방식에 따라 선호하는 가죽이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류 대표는 어떤 계열의 가죽을 선호할까?

"저는 가죽도 사람하고 같이 나이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딱 충족시키는 게 바로 천연 베지터블 가죽이죠. 이 가죽은 동물의 표피에 식물성 탄닌성분을 사용해 가공되는 가죽인데요. 사용할수록 사람의 손때가 묻고 그 멋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가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롬가죽이라고 화학성분으로 가공된 것도 있는데 제작 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생들에게도 베지터블 가죽을 가공할 수 있는 실력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비싸고 가공하기도 까다롭죠. 또 손때가 묻는다는 것은 조금만 실수해도 가죽이 이염 된다는 뜻인데요. 초보자들이 사용하기엔 쉽지가 않아요.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가죽을 마스터하고 나면 그 어떤 가죽도 두렵지 않습니다."

가죽제품은 완성된 후에도 그 관리를 철저히 해야 오래 사용할 수가 있다. 류 대표에게 가죽의 관리 방법을 물어봤다.

"대부분의 가죽이 그렇지만 천연 베지터블 가죽은 특히 이염에 취약합니다. 햇빛에 방치하면 색깔이 변색되죠. 또 너무 습기가 있어도 안 됩니다. 해서 부드러운 가죽은 널어서 보관을 하고 딱딱한 것은 원형으로 말아서 통에 보관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정리하자면 습기랑 직사광선, 이 두 가지를 특히 조심하면 됩니다. 가공된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술이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줄질'이란 말이 있다. 시계의 줄을 교체한다는 뜻인데 이것만으로도 다른 시계를 찬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명품시계 브랜드들도 최근 몇 년간 다양한 가죽 시곗줄을 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시계줄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가죽을 다루는 가죽공방에서도 제작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보통의 가죽공방에서는 시계줄을 제작하지 않습니다. 굉장한 전문분야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왜냐면 가방·지갑과는 다르게 1mm만 어긋나도 형태가 틀어지는 게 보이거든요. 시계에 줄을 끼우는 곳을 '러그'라고 하는데 이 사이즈에 모자라거나 넘치면 바로 컴플레인이 들어옵니다. 가격도 비싸죠. 그래서 전문업체에 있는 전문가들이 주로 제작을 합니다. 이렇게는 승부가 안 나겠다 싶어 틈새를 공략했습니다. 주특기인 염색과 레이저 가공을 가죽 시계줄에 접목했죠. 이것도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고 있어요. 특이하고 빈티지한 느낌을 좋아하는 고객들은 꾸준히 주문을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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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상우 대표가 만든 남성용 가방, 반지갑, 다이어리, 폰케이스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명품브랜드도 과거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성장했다고 한다. 류 대표도 이처럼 비슈누가죽공방을 유명 브랜드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지 않을까?

"제 작품이 브랜드가 되는 게 아니라, 제 기술이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제 기술이 특이하다고 인정해줍니다. 계속 혼자서만 가다 보면 누군가 사업을 제안할 수도 있고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기술이라는 건 숨기고 저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널리 유포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공유되는 게 참된 참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가죽업계도 발전할 수 있죠. 수강생들이 제 기술을 배워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 친구들이 유명해져서 저에게 배웠다고 말해준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죠?"

인터뷰는 끝이 났다. 류 대표는 잠깐의 휴식도 없이 교육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그런 류 대표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가죽공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취미라면 스트레스도 풀고 성취욕도 얻고 가죽공예만큼 좋은 게 없죠. 하지만 가죽공예를 직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마음가짐을 싹 바꿔야 해요. 아무리 좋은 가죽공방을 가도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모방이 아닌 창작을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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