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부탁받고 고교생 세 명과 농사일
벌칙 아닌 스스로 선택한 농사체험 되길

아내랑 수수밭에 풀 매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정홍 농부시인님,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교사 ○○○입니다. 우리 학교 2학년 남학생 세 명을 시인님 사는 산골 마을에 보내면 먹고 잘 수 있는 데가 있습니까?" "아니, 이 무더운 여름철에 학생들을 왜 산골 마을에 보내려고 하는지요?" "몇 해 전부터 저희 학교에서 규칙을 어긴 학생들을 서정홍 농부시인님 사는 마을에 보냈다고 하던데요?" "아아, 그러긴 했지만요." "2학년 세 녀석이 담배 피우고, 학생을 때리기도 해서 벌칙으로 4박5일 농사체험을 보내기로 했답니다. 그러니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우리 학생들을 받아주면 고맙겠습니다." "고등학생이면 누구나 호기심에서 담배도 피워 보고, 학생들끼리 다투기도 하면서 자라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면 스스로 만든 학교 규칙이 무너지고 맙니다. 더구나 후배 학생들도 담배를 피우고 폭력을 예사롭게 생각할까 싶어 걱정이 되어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으음, 4박5일이라? 그렇다면, 열매지기공동체 식구들과 의논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열매지기공동체는 황매산 자락 작은 산골 마을에 귀농한 젊은이들과 함께 만든 공동체입니다. 2006년 첫 모임 때는 6명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은 27명(9가구, 아이 포함)이나 됩니다. 공동체 식구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필요한 안건을 정하고, 서로 토론하여 결정하고 실천합니다.

4박5일 동안 학생들과 함께 지내려면 혼자 힘으로는 다할 수 없습니다. 마을회관이 있으면 학생들을 재울 수 있을 텐데, 마을회관이 없으니 가정집에서 재워야 합니다. 산골 가정집은 대부분 스무 평 안팎인데 이런저런 농사 살림까지 방에 있어 다른 사람을 재우기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철이라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아무래도 식구들이 모두 편하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3년 전에 우리 마을로 귀농한 이인화(미혼·51세) 씨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같은 열매지기공동체 식구라 큰 부담 없이 물었습니다. "인화 씨, 4박5일 동안 학생 3명을 재워 줄 수 있을까요?" "일정이 따로 없으니까 재워줄 수 있습니다." "그럼 밥은 우리 집에서 제 아내가 책임진다고 하니, 잠만 재워 주면 좋겠습니다. 친동생이라 생각하고 잘 돌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담당 교사가 학생들을 우리 마을에 데려다 주고 떠났습니다. 4박5일 동안을 제가 '농부 교사'로서 학생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노인들만 남은 작은 산골 마을에 학생들이 있으니 젊은 기운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학생들이라 밥이 입에 들어가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거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학생들을 위해 농업과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고 깨달을 '멋진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날은 인화 씨네 집에서 들깨 모종을 심고, 둘째 날은 구륜이네 집 논에 들어가 김을 매고,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한평생 산에서 살아온 정상평 농부님이 '은혜'에 대한 특강을 했습니다. 셋째 날은 오전에는 똥거름을 나르고, 오후엔 박하차를 같이 만들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사흘 동안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넷째 날은 비가 내려 농사일은 하지 못하고, 인화 씨가 학생들을 데리고 황매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8시에 '담쟁이 인문학교 삶을 가꾸는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여, 어른들과 한데 모여 써온 글을 읽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늦잠을 자고 찻집(토기장이의 집)에 가서 차를 마시고 헤어지기까지, 하루하루가 바람처럼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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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농부를 믿고 학생들을 보내준 선생님들이 있어, 4박5일 동안 행복했습니다. 묵묵히 농사일을 해 준 학생들이 있어 신바람이 났습니다. 학생들이 벌칙인 '농촌체험'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농사체험'으로 올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홀로 산밭으로 갑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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