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 풍경 앞에 나를 세우다

안개 낀 새벽 밀양 위양못, 붉고 노란 나무들을 보니 가을 풍경이다. 나무와 정자 뒤로 밀려온 하얀 안개는 장엄하면서 고요하다. 산은 그 속에 감춰져 낮은 풍경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물안개가 깔린 연못 속 정자는 마치 꿈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저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손기환(62) 작가의 '위양지 추경'이다. 손 작가는 편안한 인상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년째라는 그는 차분하게 옛 기억부터 더듬으며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손 작가의 고향은 전북 정읍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정읍에서 살다 부산으로 터를 옮겼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한 것이 이유였다. 첫 직장은 부산에서 다녔다. 그리고 부산에서 군 복무도 마쳤다. 군 생활 3년을 끝내고는 본격적으로 직장에 다녔다.

"부산 동래에 조미료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거든요. 창원에 그 그룹 계열회사가 있었어요. 옛 마산 봉암동 가는 길 쪽에. 중화학공업을 하는 회사였죠."

그렇게 창원으로 스카우트 되어서 손 작가는 다시 한번 터전을 옮긴다. 창원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였다. 그리고 현대로템에 정착해 31년을 근무하고 재작년인 2015년 정년 퇴임했다. 그는 탱크 만드는 사업부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세밀한 감성으로 풍경을 담아내는 그의 지금 모습과 당시의 모습이 언뜻 잘 연결되지 않는다.

"저는 중기사업부라고 탱크 만드는 데서 일하고 정년퇴직했어요. 결혼은 1981년 1월 7일에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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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환 사진작가. /서정인 기자

되돌아보니 예전부터 '사진여행'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사진을 찍은 지는 이제 5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을 예전부터 남달리 좋아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한테 밀렸지만 '똑딱이'라 부르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사가지고 당시에도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아내하고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프린트해서 걸어놓곤 했어요. 요즘은 손주 사진 건다고 다 뗐는데(웃음)."

손 작가는 경북 청송 주왕산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내와 주왕산에 간 적이 있어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김기덕 감독 영화를 보는데 경치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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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환 작가와 그의 아내. / 서정인 기자

'똑딱이'를 들고 주왕산 주산지 새벽 풍경을 담으러 갔다. 마침 어느 사진협회에서 사진 촬영대회를 한 이후였다. 그때 사진작가들을 처음 봤다.

"거기에 밤을 새우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진가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저도 전문적인 카메라도 없는데 그 새벽에 거길 간 것을 보면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긴 좋아했던 것 같아요.(웃음) 거기에 서 사람들이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느라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저희 아내는 그게 신기하다고 풍경 말고 그걸 찍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지금부터 십 년 전쯤 되려나…."

그때 주왕산 가는 길에 만난 사진가와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다.

"10여 년 전인데 머리가 허옇게 새시고 카메라 하나를 딱 멋지게 메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봤어요. 지금은 제가 할아버진데(웃음) 사진을 찍고 아침에 이동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주왕산 쪽으로 주산지에서 이동하던 중에 그분을 도로에서 만났어요. 할아버지가 손을 흔드셔서 차를 세웠는데 주왕산 가는 길을 물으시는 거예요. 거기서 주왕산은 걸어갈 수 없는 거리거든요. 걸어서는 못 가니까 제 차를 타시라고 해서 함께 주왕산에 갔어요. 내리자마자 사진을 찍고 다니시더라고요. 그때 그분을 보고 나도 나이를 먹으면 사진여행을 해야겠다고, 아내하고 그런 얘기를 계속 나눴던 것 같아요."

회사 동료 셋 이끌고 사진반 수업 문 두드리다

손 작가는 취미 생활을 꾸준히 해왔었다. 볼링도 치고 기타 연주를 좋아해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특히 민물낚시는 프로급으로 했다. FTV한국낚시채널에 비중 있게 나온 적도 있다.

"그때는 제가 완전히 민물낚시에 빠져있을 때예요. 미쳐가지고 한 20년 이상 한 것 같아요. 민물낚시에는 굉장히 섬세한 기술이 필요해요. 그래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거든요. 낚시에 완전히 심취해서 오랫동안 했는데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남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퇴직 시기가 다가올 무렵 결정 내린 게 역시 사진이었어요."

퇴임 후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일상을 그려보았다. 그러려면 일단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회사에 카메라를 만지는 분이 몇 분 계셨어요. 제가 그분들에게 '우리 사진 배우러 가자' 이렇게 한 거예요. 창원 문성대 평생교육원 작품 사진 연구반 과정을 모집하는데 등록해서 하자고 했어요. '거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니까 자정 12시에 온라인으로 바로 신청하자!' 그렇게 세 사람을 유인했어요.(웃음) 자정돼서 접수하려고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입력이 안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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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환 작가의 ‘위양지 추경’.

결국 안 되는 수강신청 창을 붙들고 날을 샜다. 아침이 되고 보니 6시부터 접수였다며 손 작가는 웃었다.

"그 사진반 교수님이 소나무를 찍으시는 윤병삼 교수님이에요. 그 교수님한테 배우시는 분들이 계속 신청해서 기본적으로 3~4년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처음 지원해서 들어가는 사람은 빨리 신청을 해야 해요. 소수 인원만 수업을 받으니까요. 그렇게 세 사람이랑 같이 문성대를 갔어요. 그때가 퇴직 전인 2012년이었죠. 3학기 동안 배우고 한국의 습지 단체전을 마산 대우백화점(현 마산 롯데백화점) 갤러리에서 윤병삼 교수님 지도 아래 했죠. 그게 첫 전시였어요."

개인전은 부산문화의회관에서 열었다. 사진 입문하고 1년도 채 안 된 때였다.

"단체전을 하고 난 바로 다음 해에 개인전을 열었어요. 사람들이 깜짝 놀랐죠. 2년도 안 돼서 개인전 하니까요."

수묵화 그려온 덕인지 그림 같은 그의 사진

손 작가 사진에는 주로 우리나라 풍경이 담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 아름다운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지만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다. 손 작가는 작품이 '그림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수묵화를 계속 그려온 게 사진 작품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손 작가는 말했다.

"수묵화를 스님한테 배웠는데 사진을 하면서도 한 2년 배웠어요.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수묵화 공부하러 갔죠. 2012년에는 수묵화로 한서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했어요. 문성대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입상을 한 거예요. 사실 부끄러워서 교수님한테도 얘기 안 하고, 공모전 응시를 했는데 수상을 해버리니까 소문이 다 나버렸죠."

그때 미술계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사진을 잘한다는 좋은 평도 받았다.

"미술계 인사분들이 제 사진을 잘 봐주셔서 다리를 놔주시는 거예요. 개인전 하겠냐고 하셔서 바로 '아! 하겠다'고 그랬죠.(웃음) 개인전 때 작품 27점을 걸었어요. 겁이 없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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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환 작가의 ‘소양호 상고대’.

손 작가의 사진은 몽환적이다. 안개에 가린 산, 물안개 낀 호수… 선명하기보다 어렴풋하다. 안개, 구름, 어둠, 물안개 등 자연의 힘을 빌려 손 작가의 감성을 담는다. 그래서 출사도 밤과 새벽에 많이 다닌다.

"제 감성의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새벽 이른 시간에 출사 나가고 기상도 열심히 체크하고, 오늘 가면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이 찍히겠다 싶으면 일어나서 가죠. 그렇게 해서 얻은 작품이 올해에도 몇 작품 있어요. 그리던 그 장면을 만나면 정말 황홀하죠. 보람과 성취감이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가슴이 두근거리죠."

손 작가는 작품 중 소양호 상고대(대기 중 물방울이 동결해 사물에 붙은 얼음)를 담았던 날을 떠올렸다. 아주 추운 날이었다.

"영하 25도 정도 상황에서 사진을 찍으면 삼각대가 얼어요. 나중에는 삼각대가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작동이 안 되니까요. 손은 장갑을 껴도 소용이 없어 몇 컷 찍고 바로 핫팩 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야 해요. 겨울 강원도에서 찍은 작품을 전시할 때도 걸었어요. 강원도 춘천 소양호에서 찍은 건데 습도에 의해서 나무에 서리꽃이 피는 거예요. 상고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 영하 15도 이하, 습도는 90% 이상 올라가야 해요. 날씨 맞추기가 참 어려워요. 그 조건이 안되면 상고대는 절대 필 수가 없어요.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소양호 상고대는 갈수록 구경을 못 해요. 상고대 사진도 그만큼 귀한 사진이 돼가고 있는 거죠. 5~6년 전 만에도 춘천 같은 경우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예사로 내려가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날이 잘 없어요."

상고대 사진을 찍은 그 날도 날씨 계산을 하고 먼 길을 떠났는데 다행히 적중했다.

"자정쯤 출발해서 무박으로 아침에 갔는데 일기예보 상으로는 영하 17도라고 했어요. 날씨예보를 보고 나름대로 계산을 해서 갔는데 적중을 한 거예요. 상고대가 폈더라고요. 제가 사진에 전문적으로 입문하고 나서는 그 광경을 한 번 더 못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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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환 작가의 ‘숲속의 도시’.

서리꽃 핀 나무 옆으로는 청둥오리 떼가 날아간다. 덕분에 극적으로 생동감이 더해졌다.

"이 사진을 보면 호수에 물안개가 깔려 있고 상고대가 펴있고 철새가 날아가죠. 물속에 있다가 날아가는 건데 사진 속에 아주 절묘한 타이밍으로 잡힌 거죠. 새가 없다면 이 작품은 무의미해요."

호는 춘곡, 봄 춘(春), 계곡 곡(谷) 자를 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사진 촬영 포인트를 물어봤다. 경남에 있는 독자들이 여행 삼아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까운 곳으로는 창원 주남저수지 근처의 동판저수지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 여명이 참 좋아요. 새벽에 동판지 여명이 올라올 때 가서 찍으면 좋은 사진을 찍으실 수 있을 거예요. 밀양 위양못이라는 곳에서도 기상예보를 잘 보고 가면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전시한 '위양지 추경' 사진도 계속 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한 컷 건진 거예요. 이런 장면을 만나려면 오늘처럼 비가 오고 나서 오후에 비가 그친다거나 그러면 다음날 새벽에 가보면 틀림없이 안개가 밀고 들어와요. 온도가 높기 때문에요. 지난번에 전시하면서 이 작품을 걸었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셨데요.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요. 포토샵 한 것도 아니고 원래 그 모습 그대로거든요."

손 작가의 사진은 어찌 보면 다른 이들보다 짧은 시간에 빛을 본 듯도 하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손 작가는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연을 마주한다. 앞으로 사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에 그의 사진 인생은 이제 시작인 듯도 하다,

"지금 활동은 경남나눔작가회 부회장으로 있으니 회장님과 함께 회를 더 발전시킬 거고요. 꾸준히 사진을 계속해야죠. 10~11월쯤 서울국회의사당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 중이고요."

손 작가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kihwan.son.7) 담벼락에서 그가 올리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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