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피플파워>는 사람 잡지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인터뷰 기사가 많습니다. 마침 한 후배가 '인터뷰 잘하는 방법'을 묻기도 해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난 2001년 3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불쑥 경남도민일보를 방문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도민일보 주주였습니다. 주식 증권도 받을 겸 신문사에 인사차 온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갑자기 노무현 장관을 인터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의 동향은 이런저런 언론을 통해 대충 알고 있었지만, 미리 계획된 인터뷰가 아니었던 만큼 그가 사장실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급하게 머리를 굴려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첫 질문은 아마 이랬습니다. "대선 출마설이 많은데 실제 출마하실 계획입니까?" 그러자 그는 특유의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이미 캠프까지 가동하고 있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인데."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사전조사가 안 된 탓에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게 들통나 버린 것입니다. 그때 썼던 인터뷰 기사를 찾아봤더니 그 부분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차기 대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미 캠프까지 가동하고 있다'면서 강력한 출마 의사를 재확인했다."

저의 바보 같은 질문을 적당히 눙쳐 저런 문장으로 마사지해버린 겁니다. 질문도 바보스러웠지만, 기사 작성은 비겁하기까지 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인터뷰에서 사전조사의 중요성을 그렇게 기자 12년 차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지나 한 지역신문의 기자가 저를 인터뷰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질문하는 걸 들어보니 저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필도 조사하지 않고 왔다는 게 금방 드러났습니다. 또한 "지역언론이 제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따위의 원론적인 질문에서 제가 쓴 지역신문 관련 2권의 책 중 한 권도 읽지 않고 왔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그때부터 인터뷰를 그만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수락한 터라 차마 그러진 못했지만, 제 표정은 이미 굳어버렸고 답변도 건성건성 하게 되더군요.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슈나 현안에 대한 책임자(또는 전문가)의 입장을 묻는 인터뷰가 그 하나요, 사람 자체에 대한 인터뷰, 즉 라이프스토리가 또 하나입니다. 전자의 경우 해당 이슈나 현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이고, 라이프스토리 인터뷰는 대상 인물(인터뷰이)에 대한 사전조사가 필수입니다. 사전조사에서 기존 정보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일 경우 그의 주변 인물을 통한 탐문조사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40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책으로 낸 지승호는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이라는 책에서 배우 오지혜의 말을 인용해 사전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근데 뭐에 확 마음이 열렸냐 하면요. 상상을 초월하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알고 오셨더라고요. 무서울 정도로 오지혜보다 오지혜를 더 잘 알 정도로 공부를 해오시니까, 20년 된 친구보다 더 나를 잘 아니까 술술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 그런 힘이 지승호 씨한테 있는 것 같아요."

노회찬 의원도 이렇게 말합니다.

"준비가 부족한 인터뷰어들은 인터넷만 뒤지면 금방 알 수 있는 것까지 묻는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어떤 내용이죠?'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다음은 가수 나훈아의 말입니다.

"어떤 젊은 기자들은 저를 만나러 오면서 볼펜과 수첩만 달랑 들고 와서, 저, 본명이 뭐지요? 합니다. 그런 기자를 만나면 저는 당장 그럽니다. 뭐요?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어. 당장 나가!"

두 번째로 기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정작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은 스마트폰 녹음 어플을 실행해놓고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동안 기자는 다음 질문만 생각하고 있는 거죠. 인터뷰이는 기자가 내 말을 성심껏 듣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이 닫혀 진솔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지승호의 책에서는 이에 대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터뷰어는 말은 시켜놓고, 상대방의 말을 안 들어요. 왜냐하면 다음 질문을 해야 하거든. 졸라게 다음 질문을 생각해. 그러면 사실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질문 하나 던져서 스피커 틀어 놓고, 자기는 졸라게 딴 일을 하는 거지. 말은 하는데 실제 커뮤니케이션은 안 되는 겁니다. 소통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소통이 안 되는 인터뷰,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발췌하는 인터뷰가 대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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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미리 준비한 질문 말고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문이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인터뷰뿐 아니라 일반적인 대화에도 적용됩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기보다 자신이 할 말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다 보면 대화가 잘 될 리 없죠.

'인터뷰 잘하는 방법'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이 두 가지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이라 봅니다. <피플파워>의 인터뷰이가 되시는 분들께서도 기자가 이 두 가지를 잘 지키고 있는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무더위 잘 넘기시고 9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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