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방에서 단서 조합해 벗어나는 구조
청와대 곳곳 '적폐 문서찾기'게임과 유사

'방 탈출 게임'이라는 장르가 있다. 어드벤처 게임과 퍼즐 게임이 섞인 게임이다. 숨겨진 단서를 찾고, 단서의 퍼즐을 맞춰 방을 탈출하는 게 목적이다. 게임 시나리오는 대개 이런 식이다. 범인에 의해 방에 갇혀 있다. 방 안에는 여러 개의 오브젝트가 있다. 오브젝트들을 클릭하면 활성화되는 게 있고, 거기서 단서를 얻는다. 하나의 단서는 다음 단서를 얻는 힌트가 되기도 하고, 퍼즐을 맞춰서 다음 단계로 가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해결하게 되면 최종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만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가 퍼즐을 풀며 방을 탈출하는 '방 탈출 카페'도 성업 중이다.

요즘 청와대가 방 탈출 게임장이 되고 있다. 죄다 파기하고, 대통령기록물로 봉인시켜 둔 줄 알았는데, 청와대 곳곳에서 문서들이 발견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문서들도 나오고 있다. 문서의 내용이 전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소문에 의하면 전 정권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대박 아이템이고, 누군가에게는 간담이 쪼그라들게 하는 공포의 문서들이다. 정권이 교체되었어도 아직 청와대는 여러 적폐 속에 갇혀 있는 것들이 많다. 전 정부가 만든 '적폐의 방'에서 탈출하기 위한 청와대의 게임이 시작됐다.

며칠 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1심 선고가 있었다. 김기춘에게는 징역 3년, 조윤선은 집행유예로 구치소에서 석방되었다. 대다수 시민의 법정서로는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 특히 블랙리스트 때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수천수만 명의 문화예술인들 입장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판결이다. 문화예술은 그 어떤 분야보다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 문화예술에 비뚤어진 사상의 잣대를 들이대 적극적으로 린치를 가한 짓은 반헌법적 범죄행위다. 이 엄중한 죄의 처벌이 고작 3년, 집행유예라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적폐의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단서를 더 열심히 찾아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여전히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병우 단서를 찾지 못하면 검찰개혁의 열쇠를 얻지 못한다. 캐비닛, 책상 서랍을 뒤지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형광등 뒤 천장도 뒤져보자.

적폐의 방에서 탈출하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단서가 있다. 탄핵 파면으로 끝장난 박근혜 정부를 불법적으로 탄생시킨 이명박 정부의 단서다. 국정원 대선개입 문건들이 발견되고 있다. 퍼즐을 잘 풀어야 한다. 국정원 적폐의 방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제대로 방 탈출을 하기 어렵다. 국정원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이상한 짓을 꾸밀지 모른다. 수많은 피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민주주의를 찧고 까불었다. 다시는 허튼수작을 부릴 엄두도 못 내게 해야 한다.

박근혜와 은밀한 거래를 하며 꼭꼭 숨겨둔 '4자 방 비리'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여전히 4대 강은 썩어가고 있다. 수십조 원의 돈을 강바닥에 쏟아 부은 결과, 강물은 썩고 이명박의 측근들은 배를 불렸다. 방산비리의 단서들이 발견되고 있다. 한 대에 수백억 원이나 하는 국산 헬기가 유리창에 성에가 끼고, 진동이 심해 날지 못하고 있다. 안보를 입에 달고 다니는 보수 정권이 방위산업에 분탕질을 치고 있었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만 적폐의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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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탈출 게임에 성공하려면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단서가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방에 놓여 있는 온갖 사물들을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 자칫 그 과정이 지루할 수 있으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발견된 단서의 퍼즐을 풀 때는 지혜가 요구된다. 청와대가 인내와 지혜를 갖고 적폐의 방에서 탈출해 나라다운 나라로 나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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