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한 마리 물무늬 위로 펄럭이네
학섬이라 불렸던 '이로운 물의 섬'
작은 꽃들 손짓하는 섬 가운데 숲길 오르니
그림보다 더한 절경 그 끝에 쏟아지더라

새의 어깻죽지에 도선이 닿는다. 거제 대금산에서 보면 학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어서 학섬이라 불렸다는 섬.

멸치잡이 권현망이 들어와 마을이 부유해졌고, 바닷물이 이롭다 하여 지금은 이수도라 불리는 섬이다.

'이로운 물의 섬'은 거제시 장목면 시방리에 속한다. 이수도와 뭍을 잇는 도선은 시방마을에서 출항한다.

시방과 이수도는 항로로 이어지나, 지명으로도 궤를 함께한다.

시방마을은 마을 포구와 해변이 활처럼 흰 모양이다. 남동쪽 등마루에서 이수도를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이라 시방이다.

거제 이수도 모습./최환석 기자

시방이라 불릴 때 이수도는 학섬이었으니, 도선의 경로는 활시위를 떠나 날아가는 학을 쫓는 모양새다.

어선을 대 하역하는 물양장 주변은 섬사람과 뭍사람, 외국인 노동자가 한 데 섞이는 유일한 공간이다.

학의 머리를 닮은 반도가 뭍을 향해 툭 튀어나왔다. 새의 목덜미 즈음인 반도의 끝자락을 중심으로는 마을이 섰다.

선착장에서 시계방향으로 섬을 훑어본다. 돌 틈에 핀 술패랭이꽃과 참나리가 뭍사람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반긴다.

날씨가 흐린 탓에 시야 또한 뿌옇다. 멀리 구름 아래 거인의 두 다리처럼 거가대교가 보인다.

300m가량 해안을 따라 걷다, 섬 가운데로 방향을 꺾어 호젓한 숲길로 들어간다. 오르막길의 시작이다.

섬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본다.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울 정도다.

비탈 한 면을 가득 채운 고사리는 이곳 민박집에서 나물 반찬으로 만날 수 있다. 채취는 금지.

달개비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닭의장풀은 약용과 식용으로 모두 쓰인다. 엉겅퀴도 달개비 못지않게 활용도가 높다.

달개비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닭의장풀. /최환석 기자

꽃꽂이 소재로 곧잘 쓰이는 부들은 습지에서 자생하는데, 이수도 야생에서 만나니 새롭다.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사슴이다.

해발이 가장 높은 곳에 사슴농장이 있어서겠다. 섬 군데군데 사슴 조형물이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 2013년 농장을 탈출한 사슴이 주민 골칫거리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사슴을 본뜬 조형물이 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다.

섬에는 전망대가 세 곳 있다. 해안·해돋이·이물섬 전망대다. '멀리 내다보도록 높이 만든 대'이기에 남해 전체를 조망하는 장치로서는 그만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풍경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데는 꼭 이수도 전망대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으냐는 생각이 스쳐서다.

멋쩍게 돌아서는데, 눈이 확 트인다. 전망대를 벗어나니 오히려 절경이 쏟아진다. 기이한 모양의 바위와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꼭 화폭의 그림과 같다. 아니, 그림도 채 담지 못할 모습이다. 정해진 자리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방법을 깎아내리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훌륭한 경치를 만날 수 있다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수도 숨은 절경. /최환석 기자

이물섬 전망대에 닿아 숨을 고른다. 전망대 옆엔 이수마을 공동묘지가 놓여 있다.

섬에서 나고 자라, 다시 섬 품에 안긴 이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이승과 저승의 모든 시간을 잇는 공간이리라. 뭍사람의 편견으로 감히 짐작해본다. 시 한 구절도 그렇게 말한다.

'남해여/나의 이승과 저승을 모두 메워 버린/푸르디 푸른 네 살결(이중도 시 '새끼 섬' 한 대목)'

숲길을 벗어나 다시 마을.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는 이수도분교인데, 2004년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금은 '이수도 어촌체험마을' 공간으로 쓰인다.

마을 주민은 민박을 치기도 한다. 뭍에서는 이수도 하면 '1박 3식'으로 불린다. 해산물 가득한 상을 내는데, 재료는 대부분 이수도가 산지다.

섬사람은 오로지 어업을 생계로 살아간다는 생각은 편견이겠다. 명물로 떠오른 수상콘도와 민박집을 보면서 섬 또한 변화에 분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날 걸은 거리 2.4㎞. 5176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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