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인형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문득 오늘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학원 수업 시작까지 고작 20분 남짓 남은 때였다. 아이 엄마는 잠깐 숨을 고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유를 물었다. 아이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냥 동생과 계속 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또 한 번 숨을 골랐다. "학원 다녀와서 계속 놀면 안 될까?" "나는 지금 놀고 싶단 말이야." "지난주에도 놀고 싶다고 빠졌고 그래서 오늘 보충수업하기로 약속한 거잖아."

울상을 한 아이가 말했다. "오늘은 공휴일이잖아. 선생님도 학생들도 쉬라는 뜻으로 학교도 안 가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학원은 가야 해? 그러면 쉬는 게 아니잖아."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이제 아홉 살인 딸아이가 저런 말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은 아이는 가지 않으면 공부가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공휴일에 학원 가는 건 부당하다는 것도 알았다.

지난 주말 남해상주중학교 학부모 연수에서 특강을 한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자유가 주어질 때 인간의 선함이 극대화된다"면서 믿고 아이에게 자유를 주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다 안다고 했다. 특강 기사가 나가고 나서 주변 학부모들에게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이 옳다는 건 알지만 막상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모든 걸 아이에게 맡겨놓기 어렵다고.

왜일까. 뭐가 그렇게 만드는 걸까. 결론은 하나다. 어른이 문제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점수를 매기려는 어른들. 그 점수에 따라 아이를 정의하려는 어른들.

결국 아홉 살 아이는 학원을 가야 했다. 다녀오면 숨바꼭질 놀이를 스무 번 해주겠다는 말에 아이는 쉽게 넘어갔다. 아이는 아이였다. 가방을 챙겨 밝게 웃는 얼굴로 집을 나가는 아이의 등에 대고 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야. 어른들을 믿을 수 없어서야.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