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여고 강의실의 박수와 환대
꾸짖기보다 효과 탁월 '자연복원력 이치'

최근 몇 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 하나는 대학은 물론 중등학교에서 농업과 농촌에 대한 강의 요청이 많아진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직업진로 대상이 넓어진 까닭이겠지만 농촌사회와 농업이 갖는 정화기능과 치유기능을 주목하게 된 데 있겠다. 요즘 많이 쓰이는 용어로 농업·농촌의 회복력(resilience)이다.

이를 복원력이라고도 하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동요나 교란 이전 상태로 되돌아오는 개념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질서와 규범을 찾아가는 능력까지 아우르고 있다. 창의력도 회복과 치유로부터 시작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수능을 끝낸 뒤 졸업식까지 여유기간이 생긴 인문계 고교의 3학년 교실에 몇 번 갔었는데 점차 농업고등학교와 과학고, 그리고 체육고등학교도 가게 되었다. 중학교도 갔었고 장애인 학생들도 만났다. 대학 신입생 대상 특강에도 갔었다. 쉼터 여성들과 노인요양원 등 감정노동을 하는 분들이 우리 집 농장에 와서 하루 체험을 하고 가기도 했다. 모두 회복력이 작동되는 시간이었다.

회복력에 대한 특별한 체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어느 여고에 갔었다.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몇 년 가르친 적이 있지만 여고는 처음이라 제법 긴장되었다. 2시간이나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이농 2세대도 아니고 3∼4세대라서 농촌에 대한 간접 경험도 없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 사진과 영상도 준비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강의 시간에 15분 정도나 늦었다. 환승역에서 두 번이나 실수를 한 것이다. 긴장은 극도에 달했다. 다음날이 방학이라는데 저녁 시간 특강에 늦기까지 했으니 긴장은 더 심해졌다. 강의를 망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상황이 달라졌다. 강당에 들어서는데 200여 명 학생과 십 수 명의 학부모들이 박수갈채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강당 뒷문으로 들어설 때부터 중앙통로로 연단에 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눈길을 피해서 살그머니 들어가려던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긴장은 풀렸다.

"남자친구 만날 때도 이렇게 오래 기다려주고 환대하느냐?"라고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여학생들은 "아니요"라면서 또 와르르 웃었다. 나는 긴장이 다 풀렸다. 두 시간이 쉽게 지나갔고 질문이 쇄도했다. 다음날 나를 불렀던 부장선생님은 5회 연속 특강 중 집중도가 가장 높았다고 전해왔다.

지각한 나를 야단스럽게 반겨 준 학생들 덕분이다. 그렇게 될 수 있게 사전에 충실하게 분위기를 만드신 부장선생님 덕분이다. 상대의 허물을 아무 조건 없이 덮어준 결과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을 살릴 뿐 아니라 용서한 사람을 더 복되게 만들어주는 원리다. 웃음과 박수는 꾸짖고 나무라는 것보다 교정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한 후배가 떠올랐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곳에서 일하는 그 후배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긴장은 사건과 사고를 유발했다. 악순환이었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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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요란스럽게 반겨주는 놀이'를 제안했다.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한꺼번에 손뼉을 치면서 환호하는 '놀이시간'을 가져보라고 했다. 특별한 조건 없이 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연이 갖는 복원력이 그 놀이에서 발휘되었다. 찜찜하고 꼬였던 기분과 관계가 상당히 느슨해지더라는 것이다. 자연의 속성이 그러할 것이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수용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박수와 환호로 상대를 반기는 것. 농업과 농촌의 본래 속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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