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력사무소 르포…불황에 장마·폭염 겹쳐 일용직 노동자 '한숨'

새벽 동이 트지 않은 지난 25일 오전 4시 30분, 인력사무소 불빛은 환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인력사무소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하나둘 들어온 노동자들은 사무실과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일터 배정을 기다렸다.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선 탓에 피곤했을까.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쪽잠을 청했다. 몇몇은 TV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5시가 가까워지자 인력사무소 전화기는 수시로 울렸다.

"건설현장 5명", "건설현장 2명", "식당에서 일할 아줌마 한 명."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사람들 시선은 인력사무소장을 향했다. 소장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고 일터를 배정받은 이들은 사무실을 나섰다.

ㄱ(55) 씨는 오랜 시간 재취업에 나섰지만 '경력단절' 속에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그는 "10년째 일을 하면서 애들 대학에 보냈다. 최근 2~3년간은 경기가 안 좋아 한 달 내내 인력사무소에 나와도 반도 못할 때가 잦았는데 근래 건설현장이 많이 생겨 일자리가 많아졌다"며 "여름에는 장마철이라 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10년 여기에 왔기 때문에 소장이 일을 잘 주는 편"이라고 했다. 건설 현장 하루 일당은 기술과 숙련도에 따라 적게는 8만 원에서 많게는 13만 원이다. 일당에서 통상 10%를 인력사무소 소개비로 뗀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의 한 인력공급업체 새벽 모습.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한 무리가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10여 명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명은 사무실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공시생' 김민혁(30) 씨는 인력사무소 문을 몇 차례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민혁 씨는 "집에서는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는데 취업도 못하고 부모님 지원을 받다 보니 눈치가 보여 가끔 새벽에 나오곤 한다"면서 "내일 다시 나와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날이 밝아 오면 남은 이들은 더 초조해진다. 오전 6시 가까운 시각, 창원시 의창구 또 다른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한 차례 일터 배정이 마무리돼 20여 명은 일터로 향했다. 전화벨이 두 번 더 울렸고 남은 7명 중 2명이 일터를 배정받았다. 남은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인근 식당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인다고 했다.

집으로 향하던 ㄴ(47) 씨는 "일용직은 하루하루 벌어 먹고사는 삶인데 일정하지가 않으니 계획적이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ㄴ 씨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와 잔에 따라 마시며 노동 환경을 전했다.

"사실 일을 나가도 힘들다. 한여름 낮에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살이 따가울 정도다. 현장마다 다르긴 한데 포장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일할 때는 죽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다. 무더운 날씨에는 쉬는 시간도 좀 보장해주고 그래야 탈진도 안 할 텐데. 얼음물로도 해결이 안 되거든."

경기불황과 여름철 장마, 폭염에 이중고를 겪으며 일용직 노동자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일용직 노동자는 157만 7000명에 이른다.

인력사무소장은 최근 대규모 아파트 건설현장이 생겨서 일자리 연결해주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기술 없는 일용직이 갈 곳은 그리 많지 않다"며 "매일 만나고 정산하면서 얼굴을 맞대지만 새벽에 나왔음에도 일을 못 구해 돌아가는 사람을 보면 불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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