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서비스업에 붙는 덕목 '박리다매'
이면엔 값싸고 긴 노동 '인간성 파괴'

"괜찮아, 가격이 싸면 다들 먹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서 '친환경 축산' 이미지 전략에 실패한 동생 루시를 밀어내고 등장한 낸시가 처음 뱉은 말이다.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구조가 상품의 가격(가치)에 있다는 것을 밝힌 이래로 시장이 상품의 교환가치를 통해 사람과 동물과 자연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구조는 일점 변화 없이 지금껏 작동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던 아버지 세대를 조롱하던 루시는 유전자공학이라는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가 식량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정보통신 기술과 금융자본이 신성장 동력이 되리라 장담하던 신자유주의자들이 봉착한 위기 상황에서 4차 산업 혁명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며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류를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선전하는 현실과 꼭 닮았다.

하지만, 그것은 곧 거짓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설국열차>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무한동력 '엔진'을 장착했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엔진 안에 숨겨진 아동 노예노동이 핵심이라는 것이 드러나듯이.

'경제'와 '노동'만큼 일란성 쌍생아면서도 이질적으로 이해되고 소비되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 지식기반 산업 앞에 따라붙는 '저비용 고효율' '고부가가치 산업' '블루칩'과 같은 용어는 '기술독점'과 '자본독점', 부동산 소유자들의 '불로소득'이라는 좀 더 솔직한 말로 대체될 수 있다. 진입 장벽이 낮아 독점력을 갖지 못하는 음식·서비스업 앞에는 '박리다매'나 '친절', '성실성'이라는 용어들이 응당 갖춰야 할 덕목이라며 따라붙는다. 이들을 대체할 더 솔직한 낱말은 '값싸고 긴 노동'이다.

잘 포장된 앞의 말은 '경제' 용어가 되고, 더 솔직한 뒤의 말은 '노동'의 용어가 된다. 이 둘은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몰아가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되어 앞에서는 자본소득 극대화를, 뒤에서는 노동의 멸시 현상을 만들고 있다.

시장 독점력을 무기로 이윤을 키우는 자본가와 주식투기꾼, 부동산 투기꾼 같은 불로소득자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노동자들이 사람값 올려 달라 아우성치는 목소리는 경제 위기를 불러올 위험하고 극성스러운 경멸의 대상이 된다. 150시간 이상 노동을 팔아 스마트폰을 사고, 월수입 10%를 넘는 통신료를 지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사람값을 시간당 1만 원으로 올리는 일은 경제 위기를 몰고 올 쓰나미라 인식한다.

가마솥더위 속에도 불 앞에서 음식 만드는 조리원 노동자는 절대 정규직이 되어서는 안 되는 동네 아줌마들의 하찮은 노동이라 여긴다. 반면 투기꾼들이 점령한 아파트 시세는 가격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원가 공개가 되면 경제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장래 꿈이 '건물주'라 당당히 말하고, '노동자'는 불쌍하고 가난하고 무식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이 천박한 사회는 최저임금만큼이나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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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상품과 서비스 뒤에는 반드시 값싼 노동력이 존재한다. 값싼 노동력은 필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부른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생명만 빼앗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된다. 지난 9일 끔찍한 졸음운전 사고를 낸 버스기사 뒤에는 하루 18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이 있었다.

'싼 게 결국 먹힌다'는 시장논리는 결국 동물의 생명권과 사람의 인간성을 먹어치우고, 인간 생명과 사회 안전까지 먹어치우는 위기를 낳고 있다. 더 이상 '싼 가격'이 진리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공정한 가격'이 진리가 되어야 한다. 그게 당신과 내가 함께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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