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6) 거창을 둘러싼 고봉준령
지리산·덕유산·가야산 동서남북 늘어뜨린 줄기
산 높고 계곡 많은 산세 군자 모습과 꼭 닮았나니

산고수장(山高水長).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수승대 곁 구연서원(龜淵書院) 커다란 비석에 쓰여 있는 글이다.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는 뜻으로 군자의 덕이 높고 한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시대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던 요수(樂水) 신권(愼權·1501~1573) 선생을 이른다. 하지만, 산고수장은 산이 높고 계곡이 많은 거창지역 산세를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거창한 산등성이들

넓게 보면 거창은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3대 국립공원 가운데 있다. 지리산은 남쪽으로 조금 멀고, 주로 덕유산과 가야산에서 뻗어내린 산맥이 거창분지와 가조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많은데, 대부분 소백산맥에 속한다.

북쪽에는 덕유산(德裕山·1614m), 삼봉산(三峰山·1255m), 수도산(修道山·1317m) 등이 남쪽으로 산줄기를 늘어뜨리고 있다. 덕유산을 중심으로 한 이 산군(山群)은 소백산맥의 허리가 된다. 이 중 삼봉산은 정상 봉우리가 3개여서 붙은 이름이다. 덕유 원봉(元峰)이라고도 하는데, 덕유산이 시작되는 맏형 같은 봉우리란 뜻이다.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리며 뛰어난 경치를 자랑했다. 3이라는 숫자는 불심(佛心), 산심(山心), 무심(無心) 삼심(三心)사상이나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 사상과도 연결되어 옛사람이 영험한 산으로 생각했다. 실제 거창을 포함한 서부 경남 주민은 가뭄이 들면 삼봉산 금봉암에 있는 용머리 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동쪽에는 가야산에서 뻗어나온 우두산(牛頭山·1046m), 비계산(飛鷄山·1130m), 오도산(吾道山·1120m), 숙성산(宿星山·907m)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보해산(普海山·912m) , 금귀산(金貴峰·710m)과 함께 가조분지를 에워싸고 있다. 서쪽으로는 고려시대 감음(感陰)고을 주산(主山)이었던 금원산(金猿山·1353m)과 그 줄기를 이루는 기백산(箕白山·1332m)과 현성산(玄城山·965m)이 우뚝하다. 남쪽으로는 거창의 안산(安山) 감악산(紺岳山·952m)을 중심으로 갈전산(葛田山·765m), 철마산(鐵馬山·774m), 월여산(月如山·863m) 등이 함양, 산청, 합천과 경계를 이룬다.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 이황·임훈 등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글이 바위 가득 새겨져 있다. /유은상 기자

◇안의삼동의 으뜸 원학동

조선시대 거창과 함양 사이에 안의(安義)라는 고을이 있었다. 이 고을에 조선 선비라면 한 번쯤은 다녀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으니 남도 제일의 명승이라는 안의삼동(安義三洞)이다. 안의 고을에 있던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 3개 동천(洞天)을 말한다. 동천이란 산수가 빼어난 곳을 이르는 말이다. 화림동은 함양군 안의·서하·서상면, 심진동은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 원학동은 거창군 마리·위천·북상면 일대다. 조선 선비들은 이 중 원학동을 으뜸으로 쳤다. 원학동은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에서 위천면 수승대까지, 다시 수승대에서 월정계곡 상류까지를 통틀어 이르는 지명이다. 중심은 위천면 소재지로 수승대가 있는 곳이다. 수승대에서 보면 북쪽으로 덕유산이, 서쪽으로 금원산이 있다. 수승대를 지나는 물은 금원산에서 시작한 산상천과 남덕유산에서 시작해 월성계곡을 지나는 위천이 합친 것이다.

원학동은 안의삼동 중에서도 사대부가 가장 많이 살았다. 원래도 훌륭한 선비가 많았지만, 무릉도원이라 소문이 나서 타지에서 학문과 덕이 높은 선비들이 많이 찾았다. 수승대란 이름을 조선 중기 큰 학자 퇴계 이황(1501 ∼1570)이 붙인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수승대는 원래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 신라와 백제가 세력 싸움이 치열하던 삼국시대 이곳에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을 전송했다고 한다. 사신은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근심(愁)으로 보낸다(送)는 뜻이었다. 조선시대 들어 이황이 근처 마을 장인 회갑연에 참석했다가 당시 수승대 주변에 살던 임훈(林薰·1500~1584), 신권과 만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양으로 급히 가야 할 일이 생겨 아쉬운 마음으로 시를 적어 보냈다. 이 시에서 이황은 수송대를 수승대(搜勝臺)로 고쳐 부른다. 그는 보낼 송(送)자가 이곳 풍경과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창 고을 진산 건흥산

조선시대 거창 고을 진산(鎭山·나라가 지정한 고을을 수호하는 산)은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건흥산(乾興山·573m)이다. 사람들에게는 거열산성군립공원(居列山城郡立公園)으로 알려졌다. 이 산성은 거창이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이란 부족국가일 때 쌓았다. 조선시대 지도에는 고성봉(古城峰)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우던 곳이었다. 지금은 경남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22호다.

건흥산은 그 뿌리를 삼봉산에 두고 있다. 옛날 가뭄이 들면 삼봉산에 이어서 이곳에서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대부분 조선시대 진산이 그렇듯, 건흥산도 지금은 거창 주민들이 운동 삼아 즐겨 찾는 휴식처다. 산자락을 에둘러 거창읍으로 향하는 위천 주변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또 등산로 입구에 약수터와 체력단련기구가 있는데, 실제로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거창군사>(거창군사편찬위원회, 1997)

<조선선비들의 답사일번지>(경상대 출판부 최석기, 2015)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국토지리정보원, 2011)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