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표성배 시인 '시·산문' 묶은 <미안하다> 출간

'희망 퇴직', '정리 해고'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삶이 책에 담겼다. 창원 표성배(51·사진) 시인의 <미안하다>다. 시인은 지난 2015년 11월 26일부터 12월 25일까지 한 달가량 매일 시, 산문으로 일기처럼 남긴 글을 묶었다.

'2015년 11월 26일'은 시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0년 넘게 다닌 회사가 '공장 폐쇄'를 알린 날이다. 폐쇄 공고가 나고 희망퇴직을 받았다. 시인은 공장에 남았지만, 자의, 타의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동료 40%가량이 공장을 떠났다.

시인은 불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공장에 남아 있는 우리는 공장에 출근하는 것이 이제는 불안과 하루하루 싸우는 일임을 알게 됐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삶의 연속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불안과 한 몸이 됐다."

희망퇴직으로 고통을 강요한 회사에 분노하면서 공장 동료,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미안하다'라는 시다.

"미안하다/눈 뜨면 다가와 있는 이 아침이,/오늘, 이 아침이 미안하다/공장 기계들 이른 아침을 깨우는/햇살이 퍼진다/너와 나 사이 골고루 퍼진다/어제 동료 앞에/햇살 그 푸근함을 말하는/내 입이 거칠구나/공장 야외 작업장을 터벅터벅 걷는/이 아침이 미안하구나/오롯이 숨 쉴 수 있다는 게/더 미안하구나/나는 아직도 어제에 살고 있다/공장 처마 아래를 떠나지 못하는/망치 소리가 땅땅 답하고 있다/쿵쿵 프레스가 가슴을 치고 있다/(…생략)"

2015년 12월 21일 글에서도 '미안함'을 이야기한다. "자괴감.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식구가 아침에 보이지 않는다. 하늘로 솟은 것일까? 땅으로 꺼져버린 것일까? 부끄럽다. 부끄럽다. 얼굴 들 수 없는 이 자괴감이 내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다. 살아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말 온몸으로 느낀다. 벽과 벽 사이에 또 벽이 있다. 그 벽 속에 내가 들어 있다."

시인은 책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공장은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 노동자의 삶이 오롯이 배어 있는 삶터다. 이러한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끈 하나를 빼앗기는 것과 같다."

시인은 의령에서 태어나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 <공장은 안녕하다>, <기찬 날>, <기계라도 따뜻하게>, <은근히 즐거운> 등 시집이 있다. 248쪽, 갈무리,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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