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20년생 나무 230만 그루 희생' 간편함에 외면한 현실
재활용 안 된 종이컵 86% 매립·소각‥'물병쓰기'변화 시발점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학생 ㄱ(22) 씨는 오늘도 수업을 듣기 전, 강의실 앞 자판기에서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율무차를 뽑아 마셨다. 다 마신 종이컵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계속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점심을 먹은 뒤엔 근처 커피전문점으로 향한다. 굳이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아도 매장에선 알아서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준다. 저녁엔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종이컵에 콜라를 나눠 마신다. 따로 씻지 않아도 되고 한 번 사용하고서 바로 버리면 되기 때문에 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 애용하고 있다.

종이컵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할 때 나도 모르게 사용하는 것이 종이컵이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에서도 종이컵에 커피와 음료를 담아 팔고 있다. 요즘은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도 늘었다.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을 만큼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익숙한 것이 바로 종이컵이다.

우리는 그저 간편하다는 이유로 매일 종이컵을 쓴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나무들이 얼마나 될지, 제조나 폐기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종이컵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물병.

◇재활용 잘 안 되는 종이컵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2년을 기준으로 1년에 약 230억 개의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종이컵 1t을 생산하려면 20년생 나무 20그루를 베어야 한다. 단순하게 종이컵 하나를 5g으로 볼 때 1년에 20년생 나무 230만 그루가 베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제법 많다. 5g 종이컵 하나를 만드는 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컵 무게 두 배가 넘는 11g이라고 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윤희 선임연구원은 "종이컵을 만들 때 코팅제와 같이 다른 물질이 들어가기에 가공할 때 에너지가 필요하고, 폐기물을 운송, 매립, 소각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에서 환경 영향이 발생하며, 이때 석탄 에너지를 사용하면 자연적으로 온실 가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종이컵과 관련해 환경호르몬 검출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일회용 종이컵 코팅제를 통해 면역체계와 호르몬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된다는 것이다. 인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자주 쓰는 처지에서는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런 종이컵은 뜻밖에 재활용이 잘 안 된다고 한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종이컵은 일반 종이보다 부피가 커 운반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수거도 어려워 같은 재질의 폐지 재활용률인 66.3%에 비해 낮다. 재활용되지 않은 종이컵 중 86.3%는 매립이나 소각되고 있어 추가로 처리 비용이 든다. 매립비는 개당 0.92원, 소각비는 개당 1.12원이다. 이렇게 우리가 편하자고 쓰는 종이컵이 환경에 주는 영향은 크다.

종이컵 소비를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아예 종이컵을 쓰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박성은(22·경상대 국어국문학과 3년) 씨는 3년째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와 물병 등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박 씨는 고등학생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비롯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보는 미션을 수행하는 걸 보고 자신도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 이를 바로 실천했다. 박 씨는 "매번 사용하기 전에 화장실에서 컵을 씻어야 하고 씻을 장소도 마땅치 않을 때가 잦아 불편하긴 하다"면서도 "그래도 물을 더 자주, 많이 마시게 되고 커피전문점에 개인 컵을 들고 가면 할인도 되니 여러모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종이컵 없이 일주일 살아보니

그래서 실제 일주일 동안 종이컵 없이 살아봤다. 집 냉장고의 제일 아래 칸에서 물병을 하나 꺼냈다. 몇 달 전,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고 나서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것이었다. 종이컵을 안 쓰는 대신 항상 이 물병을 갖고 다녔다. 음료를 다 마시면 화장실 세면대에서 간단하게 물병을 헹군 뒤, 집에 돌아와 식초를 넣고 한 번 더 씻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같은 물병을 사용했다. 종이컵을 한번 쓰고 버렸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일이었다. 첫날엔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시다 양 조절을 잘못해 옷에 쏟고 말았다. 조심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물병을 사놓고 어떻게 쓰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뒤 일종의 책임감이 생겼다. 들고 다니기에도,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도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름대로 익숙해지게 됐다.

그렇지만, 종이컵 없이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인데도 바로 불편함이 느껴졌다. 일단 물병을 챙기는 것부터 신경 써야 했다. 물병을 깜빡하고 나가 빈손으로 돌아다닌 날도 있었고, 반대로 점심을 먹은 뒤 가게에 물병을 놓고 나온 적도 두어 번 있었다. 커피전문점에서 물병을 꺼내며 "저는 여기에 담아 주세요!"라고 할 때 괜히 귀찮게 구는 건 아닌지 신경 쓰며 직원의 표정을 살피기도 했다. 회사 선배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물병을 들고나가는 것도 조금 눈치가 보였다. 커피를 꼭 마시고 들어가겠다는 뻔뻔한 태도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개인 컵을 들고 다니는 건 일회용 종이컵을 쓸 때보다 귀찮고 불편하다. 그래도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 같다. 작지만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실천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 이젠 어디를 가나 항상 물병을 들고 다닌다. 커피전문점 안에서 커피를 마실 때에도 일회용 컵에 담아주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는 '착한 습관'도 생겼다. 길을 걸으며 물병이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또 있나 찾아보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 종이컵을 쓰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종이컵을 쓰지 않는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 생각에 오늘도 물병을 챙겨 집을 나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