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대로 받아들이자 편해졌다는 도반
곤충·잡초와도 소통함이 진정한 공부

몇 년 전 퇴임 후 전원생활의 꿈을 안고 고향에 귀촌한 도반이 있다. 소박한 집에 비해 텃밭과 정원이 제법 넓었다. 텃밭과 정원에 이것저것 채소와 꽃나무들을 심어놓고 흐뭇해하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뒤 가끔 만나면 전원생활의 낭만 못지않게 괴로움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에 우후죽순처럼 자라는 잡초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바랭이, 여뀌, 방동사니, 쇠비름, 특히 뽑아도 뽑아도 다시 줄기차게 솟아나는 띠풀 같은 잡초를 바라볼 때마다 그것을 뽑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 같은 게 가득한데 몸은 따라주지 않아서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카톡으로 장문의 편지가 왔다. 뜻밖의 내용이었다. 마냥 귀찮고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던 잡초가 요즘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사연인가 했더니 교당에서 마음공부를 한 것처럼 경계를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그대로 인정하고 편하게 받아들이자 마음도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잡초를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잡초를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공부의 기회로 삼았더니 뜻밖에 잡초에 대한 친근감도 생기고 귀찮아했던 적대감도 사라져 머리가 개운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잡초가 나도 괜찮고, 시간이 나고 몸이 허락하면 즐겁게 풀 뽑기를 하니까 일도 즐거워져서 전원생활의 즐거움이 두 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계란 무엇일까? 인식의 주체인 마음이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과 의식이 인식의 대상인 색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촉감과 현상세계를 만나는 지점이 경계다. 이 경계를 당해서 분별하는 마음과 주착하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 만나주고 받아주면 마음에 대립과 갈등이 없고 안정과 평화가 온다. 그러면 바로 봄(正見)과 바른 실행이 가능해진다. 상대를 배려하는 여유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야말로 신비고 자연스러운 기적이다. 마음을 닦는 공부는 힘들게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다. 순서와 이치를 따라 잘 수행하면 너무나 쉽고 재미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다. 천만경계를 당해서 경계에 속거나 경계에 휘말리거나 경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를 끌고 가는 자기주도적 수행이다.

자운산중 농아비구(慈雲山中 聾啞比丘)

사래심현 사거심멸(事來心現 事去心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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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산 깊은 산속에 귀먹고 말 못하는 비구가 살았다. 이 비구스님의 하루 일과는 종일 일이 있으면 그 일의 특성을 따라 일하고 일이 없으면 원래 없는 본연의 체성에 합하는 것이 전부였다. 혹 밋밋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순 소박한 이 비구승의 삶은 수행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인간 오만과 불통의 시대에 자연과 함께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저 작은 미물 곤충과 저 잡초 한 포기와도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이 행복감이 나를 찾는 공부다. 내 인생의 전반부가 찾고 쌓는 열정의 시기였다면 노후의 삶은 내려놓고 비우는 한가로움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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