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털 여자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
금기·혐오? 'NO'…몸에게 자유를

여름, 민소매의 계절이다. 나는 남자들이 부럽다. 겨드랑이털(이하 겨털) 제모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버스에서 원피스 입은 여자가 손잡이를 잡는데 겨털이 부숭부숭하더라."

선배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겨드랑이에 털이 나기 시작한 나는 소매가 잘 덮여있는지 흘깃 눈으로 확인했다.

2차 성징이 도드라지면서 겨털과 가슴 크기가 또래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한 친구는 하늘하늘하는 털 몇 개만 뽑아주면 된다고 말해 부러움을 샀다. 누가 하라고 시키진 않았지만, 친구들은 하나둘씩 스스로 제모를 했다. 어른이 된 나는 결혼을 앞두고 반영구 제모를 했다. 3번 제모에 10만 원.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완전 투항 자세로 10분을 있었다. 따끔따끔, 레이저가 훑고 지나갈 때마다 겨드랑이가 뜨거웠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다. 겨드랑이는 살이 접히는 대표적인 부분으로 이때, 털은 체온 조절뿐 아니라 살과 살의 마찰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여성의 겨털은 역할 수행도 하기 전에 무섭게 잘려나간다. 겨털 입장에선 억울할 법도 하다. 머리털처럼 길게 자라는 게 자연의 순리인데 여성의 겨드랑이에 났다는 이유로 이토록 무참히 잘려나가니까 말이다.

대학 시절, 가수 비의 겨털 유무를 두고 남자 선배와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가수 비가 음료수 광고를 위해 제모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선배의 한쪽 겨드랑이털을 미는 조건으로 내기를 걸었다. 다음 날 제모를 하고 온 선배는 후기를 전했다.

"지하철 타고 오는데 별생각 없이 겨털 없는 쪽으로 손잡이 잡았다가, 깜짝 놀라 반대편으로 잡았어." 그리고 며칠 후 불편을 토로했다. "털이 자라니까 살 닿을 때마다 따끔거려. 여자들은 대체 어떻게 참고 제모하냐."

이처럼 남성에게 겨털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여성에게는 다르다. 까딱하면 '더러운 사람', '자기 관리 안 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비친다.

가만 살펴보면 여성 몸에 대한 간섭과 제재는 지나치게 많다. "치마 입을 땐 팬티 안 보이게 속바지 입어라", "브래지어 끈 안 보이게 러닝 입어라." 어릴 때부터 세뇌당할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심지어 중학교에 다닐 땐 속바지와 러닝을 입었는지 복장검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마치 성적인 특징이 조금이라도 도드라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이상한 건 성인이 되면서 반대가 됐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외모나 몸매 평가를 듣는 것도 흔한 일이요, 꿀벅지, 베이글녀 등 유난히 여성의 신체부위를 지칭하거나 부각시킨 말들을 각종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소개는 더욱 실소가 나온다. '소개팅남이 반하는 데이트룩', '남편이 더 좋아하는 향수'…, 분명 여성이 쓰는 상품인데 목적은 남성을 위한 것이다. 아니, 내 몸을 위한 것인데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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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성철 스님의 잠언이 떠오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여기에 덧붙여 '몸은 몸이요, 겨털은 겨털이다.' 겨털은 금기도, 혐오도 아니다. 몸의 일부일 뿐이다. 나에게 겨털 기르기는 대단한 결심이다. 하지만, 내 몸에 대해 고스란히 나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올여름 겨드랑이에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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