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학예사 부재, 도슨트 활용만…장기 전시 계획·자료화 모색해야
시 '문화예술타운' 밑그림도 주목

2015년 7월 16일 문을 연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 개관 2주년을 맞았습니다. 미술관이 지어질 당시의 기대감과 호기심은 사라지고 관장과 전문학예사가 없는 미등록 미술관이라는 오명을 떠안고 있습니다. 졸속 개관이라고 지속적으로 지적받는 이유입니다. 내년은 고 이성자(1918~2009)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겉만 그럴듯한 건축물이 아니라 내실을 제대로 갖춘 미술관으로 자리 잡아야 할 때입니다.

◇전문학예사가 없는 미술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하 이성자미술관)은 진주혁신도시 내 영천강 변에 있다. 이성자 화백이 생전에 '남강이 보이는 넓은 자리에 아이들과 가족들이 쉬면서 작품도 볼 수 있는 그런 미술관을 진주에 짓는 것이 꿈이다'라고 한 말처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지난 2015년 7월 개관식 장면. /경남도민일보 DB

이 화백은 지난 2008년 자신의 작품 376점(유화 77점, 판화 237점, 판화와 시 6점, 수채화 13점, 도자기 15점, 소묘 28점)을 진주시에 기증하고 시와 약정서를 썼다. 2014년까지 미술관을 건립해달라는 것과 그렇지 못하면 본인이나 대리인에게 작품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약속했다.

진주시는 서둘러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마침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관련 사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2014년 건물이 준공됐고 LH는 시에 기증했다.

이제 관장과 전문학예사 등 미술관이 꼭 갖춰야 할 인력과 시설을 마련하면 이 화백의 작품을 내걸고 관람객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진주시는 미술관 등록을 위한 절차를 뒤로 미룬 채 '은하수 그곳에 꿈을 꾸다'라는 이름으로 개관전을 열었다.

차후 미술관 모습을 제대로 갖춰가겠다는 진주시 계획은 현재도 사정이 여의치않아 보인다. 올해도 전문학예사를 뽑지 않아 여전히 미등록 미술관으로 남아 있다.

이는 시가 앞으로 임의로 운영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학예사가 없는 미술관은 잘 갖춰진 문화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또 시민이 질 높은 문화를 누릴 수 없도록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지난 2008년 이성자 화백과 당시 정영석 진주시장이 진주시청 시민홀에서 '이성자 화백 작품 기증 협약식'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미술관 운영 장기적인 안목 필요해"

이에 대한 여러 문제점은 진주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미술관을 운영해 가면서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시설도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야 하는 속사정을 알아달라"고 했다. 예산 확보 등이 걸림돌이다.

그래서 시 문화예술과는 궁여지책으로 여러 대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우선 도슨트(전시 안내 도우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5년 개관 때 1기를 모집했고 지난해 2기를 선발했다. 총 24명이 활동하고 있다.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4시 시간대별로 2명이 일을 한다. 이들은 이 화백의 작품을 해설하고 전시를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얼마 전 서울 이성자기념관을 둘러보기도 했다.

관람객이 이성자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하지만 도슨트 활용은 1차원적인 것에 불과하다. 학예사가 없으면 진주시가 소장한 이 화백의 작품 300여 점을 어떻게 구성해 전시를 열 것인가에 대한 장기계획을 세울 수 없다. 또 전시와 별도로 이 화백의 작품세계 등을 연구하거나 자료를 만드는 작업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문화예술과 직원이 이성자기념사업회와 교류하며 제1·2전시실을 운영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담당자가 바뀌는 시 행정은 지속성이 없다. 그래서 단순한 작품 교체가 아니라 구상 작품부터 우주의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해 전시실에 내거느냐 하는 일은 앞으로 이성자미술관의 앞날을 가늠해보는 것과 다름없다.

이성자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진주시가 소장한 작품은 고 이성자 화백의 일대기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장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학예사와 관장 없이 운영되는 것이 아쉽다. 지방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진주시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술관을 문화예술타운으로"

진주시는 다른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 전시로 이 화백의 작품세계를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성자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특별초대전이 진행됐다. 진주 출신 소헌 정도준 서예가가 '정도준전'을 연 것. 그는 고향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필획과 구조'라는 주제로 대표작 '천지인' 시리즈와 여러 위인의 어록 등을 내걸었다.

시는 다양한 작가를 초대해 이 화백 작품만을 전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미술품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관람객이 늘어나면 오히려 이성자미술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활성화되어 미술관의 요건을 갖춰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 이성자 화백 작품 '2007년 7월의 도시'. /경남도민일보 DB

시는 장기적으로 이성자미술관을 '문화예술타운'으로 운영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술관 옆 공터에 전시실 등을 추가 건립해 그림과 글, 음악과 공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작고한 진주 출신 작가와 진주에서 활동하는 중견·원로작가들의 작품 기증이 이어져 시너지는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혁신도시에 세워진 이성자미술관은 그동안 부족했던 문화시설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다. 많은 시민이 찾아주길 바란다. 고 이성자 화백의 말처럼 쉬러 오는 공간, 편안한 미술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에 따르면 이성자미술관은 2015년 7900여 명, 2016년 7300여 명, 올해 현재까지 3400여 명이 다녀갔다.

*현재 1전시실에서는 고 이성자 화백의 상설전, 2전시실에서는 정도준전이 열리고 있다. 입장료 일반 2000원, 청소년 1000원. 월요일 휴관. 문의 055-749-3663.

▲ 고 이성자 화백./경남도민일보 DB

<고 이성자 화백은?>

-진주여고 졸업 이후 파리행, 유화·목판화에 한국성 담아

서양화가이자 판화가인 이성자(사진) 화백은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에 입학해 공부했다.

유화와 목판화에 특유의 한국성을 담아 파리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고 직전까지 85회 이상 개인전과 300회 이상 단체전을 세계 각지에서 열었고 에콜 드 파리 소속 유일한 한국 화가로 기록되어 있다.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초창기 작업을 거쳐 생명의 근원, 음과 양의 세계 등을 기하학적인 상징물로 표현했다. 말년에는 인간과 우주의 존재론적 성찰을 주제로 삼았다.

고 이성자 화백.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도불 50년 개인전을 열 즈음 그의 모습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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