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뺀 파리의 일상, 그 속에도 마법은 있다
벼랑 끝 공연 구하려는 한 남자의 로드무비 코미디
사고뭉치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가는 여행

'알파벳 B와 D 사이에 C가 있다.'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있는 것이 선택(Choice)이라는 뜻이다. 하루만 봐도 입을 옷부터 저녁메뉴까지 선택으로 시작해 선택으로 끝난다. 영화관에서도 선택은 이어진다. 2016년 한 해에만 1500여 편의 영화가 개봉한 한국 영화관. 한 주에 30여 편이 새롭게 관객을 만난다고 보고, 상영극장이나 시간대를 고려하면 우리는 매주 3~4개의 영화를 두고 고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 이제 사람들은 상영 시간표 앞에서 생각한다. 영화 기본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선택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기준이다. 어떤 장르인지, 주연 배우나 감독이 누구인지, 영화 소재와 줄거리가 어떤지를 살펴본 후 표를 산다. 꼼꼼한 이는 포털이나 영화 커뮤니티에서 먼저 본 사람들의 리뷰나 평가를 검색한다. 몇몇은 영화 전문가들의 평도 찾아본다. 물론 영화관에 도착하면 가장 빨리 시작하는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양한 선택 과정에서 개인 성향이나 취향이 드러나는 걸 보고 있으면 꽤 재밌다. 특히 선택에 대한 평가, 즉 영화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이야기하면 더 재미있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파리의 밤이 열리면>(2016)을 추천하고 있다. 로드무비 형식의 코미디 영화다. 파리의 에투알 극장은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연출가를 초청한 공연인데 진행이 영 수월하지 않다. 몇 개월 동안 미지급된 월급 때문에 극장 직원들은 파업을 했고, 연극 무대에 오를 원숭이는 아직도 섭외하지 못했다. 극장 운영주 루이지는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극장 밖으로 나선다.

여기까지 정보를 접한 관객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미드 나잇 인 파리>, <비포 선셋>에서 봤던 낭만적인 파리, 그것도 밤의 파리라니! 기대에 맞춰 카메라는 다양한 색감으로 담은 파리를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네온사인과 자동차 전조등으로 채워진 파리의 밤거리, 새벽 기운이 가득한 센 강, 모두가 잠든 밤의 동물원이 관객만을 위해 열려 있다.

영화 주인공인 루이지는 이 파리 여행의 안내자다. 영화 초반 극장을 나서는 루이지를 보며 관객들은 어떻게든 투자자를 설득해 월급을 마련해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루이지는 인근 바에 들러 부도수표를 남발하고 남의 촬영장에 불쑥 들어가 헤집고 다닌다. 얼결에 루이지를 따라나선 극장 인턴 파에자의 얼빠진 표정이 곧 관객의 표정이 된다. 정신없는 발걸음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 혹 떼려다 다른 혹이 더 붙어버리는 이야기. 문제를 피하기만 하는 루이지의 행동까지 도무지 정신이 없다. 자신의 선택에 물음표를 붙이는 관객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영화야!!

관객이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루이지와 파에자는 파리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그 속에 어떤 고요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루이지가 그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마음을 써온 것이 하나둘 발견되기 때문이다. 정신없어 보이던 그의 발걸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닿아있음을 확인할 때 슬그머니 관객은 뒷수습을 하는 파에자 곁에 함께 서 있게 된다.

이것이 내가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다. 영화 제목의 '파리'가 '루이지의 파리'이고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들이 '루이지가 만나는 사람들'임을 깨달았을 때의 새로움과 놀라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개연성도 없어 보이고 정신없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어떤 에너지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만났을 때 더 불꽃이 튈 수 있는 그런 에너지들 말이다.

/시민기자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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