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팔방 문화유산, 길동무이자 말동무
무더운 여름 곳곳서 만난 술정리 동 삼층석탑·고택나무
만옥정공원에 볼거리 가득

'섭씨 35도.' 국도 5호선을 따라 창녕읍으로 가는 길. 바깥 온도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걷는 날을 잘못 택한 듯하다.

그나마 국도 5호선이 여러 고속도로와 노선을 공유하는 덕분에 교통량이 적어 가는 길이 답답하지는 않다.

읍내를 찾아 가장 먼저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중심부에 놓인 널찍한 공간에 들렀다. 석탑 주변으로 공원화가 한창인 모습이다.

이중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모습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석탑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 창녕객사.

지난 1965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동 삼층석탑을 해체해서 수리·복원을 하다 사리 7과와 사리장엄구(사리함, 사리병과 더불어 사리를 봉안하는 장치를 아우르는 말)를 발견했다.

탑 이름에 '동(東)'이 붙은 까닭은 무엇일까. 마침 이 탑에서 직선거리로 떨어진 곳에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있다.

한 절터 안에 탑 두 개를 세워서가 아니라, 술정리에 두 개의 탑이 있기에 동과 서로 구분하여 부른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 탓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른다. 그늘을 찾으려 고개를 돌리니, 고즈넉한 저택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채 뒤로 초가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한 곳. 보통 초가삼간이라 부르는 일자형 홑집인 안채가 국가민속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진양 하씨 고택'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지만, 현재 누군가 사는 명백한 가정집이다. 주말을 빼고, 평일에만 시간을 정해 조용히 둘러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씨에 고마움을 느끼며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그늘진 마루에 앉아 숨을 고른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한 석탑보다는, 고택이 더욱 정감 있고 여유가 흐른다.

▲ 고즈넉한 진양 하씨 고택.

3일과 8일 장이 서는 창녕 상설시장을 지나 창녕경찰서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경찰서 건물 옆으로 낮은 언덕에 자리한 만옥정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봄철 벚꽃이 장관이라는 공원은, 여름엔 그늘이 일품이다.

어디 그뿐이랴. 신라진흥왕척경비, 창녕 객사, 퇴천삼층석탑, 창녕척화비를 한데 모았다. 면적은 1만㎡이나, 볼거리는 한가득.

전형적인 객사는 가운데 주 건물이 있고, 좌우에 익사가 있는 구조다.

창녕 객사는 다른 객사에 비해 높이가 무척 낮다. 벽이나 창호도 없이 기둥과 지붕만 덩그러니 남아 애처로운 모습이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시장을 세운다는 이유로 본래 위치에서 술정리로 옮겨졌고, 1988년 현재 자리로 다시 옮겼다고 하니 잦은 이동이 까닭인 듯하다. 옮겨진 문화재는 객사뿐만이 아니다. 원래 교하리에 있었던 척화비는 광복을 맞은 후 공원으로 옮겨졌다.

신라진흥왕척경비 또한 원래 말흘리에서 발견한 후 10년 뒤인 1924년 공원 한쪽에 놓았다. 비를 발견한 자리에는 표지석을 세워놓았다고.

높이 178㎝, 너비 175㎝, 두께 약 30㎝ 규모 척경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신라 진흥왕이 세운 기념비다.

진흥왕 순수비는 북한산비·마운령비·황초령비·창녕비가 있는데, 왜 창녕비만 공식적으로 순수비가 아니라 척경비라 부를까.

다른 진흥왕 순수비에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 쓰여 있는데, 창녕비에만 빠져있다는 이유에서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

'임금이 나라 안을 살피며 돌아다닌다'는 뜻의 '순수' 없이 새 점령지 정책과 관련자 이름을 열거했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 경계를 넓혔다는 뜻으로 '척경비'라는 설명이다.

비문 첫 마디에 '신사년 2월 1일 입'이라 쓰여 있어, 건립 연도를 진흥왕 22년인 서기 561년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다른 순수비 3개보다 앞서 세운 비석이 된다.

창녕군은 척경비가 있는 만옥정공원과 더불어 여러 문화재를 잇는 길 두 갈래를 홍보한다. 이른바 '진흥왕행차길'과 '송현이길'이다.

송현이길에 붙은 '송현이'라는 이름은 무얼까.

전문가들은 송현동 고분군 1500년 전 순장 흔적에서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던 인골 1구를 복원한다. 153㎝, 16세 여성으로 밝혀진 순장소녀에게 붙인 이름이 바로 '송현이'다.

진흥왕행차길과 송현이길이 겹치는 교동 고분군에 들러 읍내를 둘러본다.

한때 비사벌이라 불렸던 고장. 이곳에 터를 잡아 세력을 키웠을 비화가야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고는, 다시 현실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이날 걸은 거리 2.6㎞. 4601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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