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최근 13개 항목으로 구성된 적폐청산TF 리스트를 확정했다. 국정원의 적폐에 대한 조사가 정치보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야권은 하고 있지만, 여권은 발표된 항목들만으론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건 민주주의 정치체제 운영과 관련해 중요한 원칙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정원이 했던 정치공작이나 사찰을 더는 방관하거나 방치할 수는 없다. 특히 정권안보를 국가안보로 해석하면서 불법적인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왔다고 의심받는 국정원은 개혁만으론 부족하고 오히려 조직을 혁파하는 수준의 쇄신작업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국정원이 개입해 국내정치를 혼돈에 빠뜨린 굵직한 사건을 열거하면 북방한계선(NLL)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18대 대선 국정원 댓글 사건, 노무현 논두렁 시계사건,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RCS)을 이용한 민간인 사찰과 선거개입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박원순 제압 문건, 좌익효수 필명 사건 등이다. 게다가 채동욱 검찰총장 뒷조사, 추명호 6국장 비선보고, 극우단체 지원,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문화계 블랙리스트, 헌법재판소 사찰 등과 같이 국가의 법질서를 무시하면서 월권을 행사해 왔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더해지고 있다. 이른바 13개 리스트에 포함된 사건들 하나하나는 국기를 흔드는 초대형 정치사건이다. 만약 국정원이 아닌 특정 조직이 이런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행위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 왔다면, 과연 현재 조직이 존재할 수 있을지 라는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뿌리를 흔드는 행위를 근절하려면 국정원 개혁은 지금 당장 실행돼야 하는 급박한 과제이다. 또한 국정원 개혁은 결코 정치보복이 아니라 정치체제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정원의 역할과 임무부터 다시 규정돼야 한다.

집권자의 개인적인 의지로 국정원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경우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법 적용과 함께 조직운영에 대한 감찰이 있어야 한다. 국회가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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