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나는 나를 엄습하는 이 고독감이 무엇인가 그 정체를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나를 눌러붙이는 이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부채를 일시라도 망각할 수 있는 무엇이고 마음 팔 만한 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그것뿐입니다.(중략) J! 너무 시장하더니 오늘 나는 아무래도 머리가 좀 돌았나 봅니다. 창자가 공허하면 뇌대(腦袋)도 공허한 법이니까!’

청마 유치환 선생이 애정이라기보다는 같은 정신세계에서 마음을 털어놓는 문우(文友)로 지냈던 정향 이영도 여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이 편지는 청마가 세상을 떠나고 서간집으로 발간돼 화제를 뿌리기도 했는데 편지를 부치기 위해 청마가 자주 갔던 통영우체국 자리가 ‘청마 거리’로 지정돼 선포식을 갖게 됐다.

통영시(시장 고동주)와 청마문학회(회장 문덕수)는 13일 오후 3시 통영시 중앙동 일대의 거리 200m 구간을 ‘청마 거리’로 선포하고, 통영우체국 앞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로 시작되는 시 <행복>을 새긴 청마 시비(기념조형물)를 세울 예정이다.

청마문학관과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청마거리는 청마가 윤이상·유치진과 함께 벌인 문화활동의 근거지였던 통영문화협회와 청마가 재직했던 통영여중·고교 등이 있던, 청마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이다.

청마거리는 유명예술인거리조성추진위원회가 지난해 12월1일 유명예술인의 거리 중 처음으로 지정한 것으로, 앞으로도 계속 유명예술인의 거리를 만들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청마거리 선포식에 앞서서 오후2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는 제2회 청마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2회 수상자로 청마의 시적인 틀 중에서 모더니즘을 잇고 있는 원로시인 김윤성(76)씨가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바다와 나무와 돌>(99년). 1925년 서울 출생으로 해방 직후 정한모 등과 시동인지 <백맥>을 펴냈던 김씨는 “절제된 이미지의 모더니티를 중시하며,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뇌와 사색에서 일상의 의미추구로 발전해왔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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