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팟캐스트 <우리가 남이가>의 세 번째 시즌. 배진영(26) 씨는 예전부터 토론 참석자로 종종 참여했지만, 올해부터 당당하게 한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는 '정경유착('배나나', '겸손' 두 청년의 정치·경제 이야기)'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른 진행자들과 돌아가며 <우리가 남이가>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진영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두 달 전부터 경남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일하고 있다. 그를 만난 이유는 이 활동들 때문이 아니다. 집회 현장이나 청년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곳에서 꾸준히 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정치적인 소신을 밝히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적지는 않지만 진영 씨가 눈에 띄는 이유는 정치적인 소신을 그 다운 발랄함을 더해 드러내기 때문이다.

진영 씨는 다가오는 여름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두 달 전 취업해 창원시 사파동 경남민언련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독특한 의상과 밝은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옷이나 신발 이런 거 엄청 좋아해요. 머리 색깔 잘 나오지 않았어요?(웃음)"

잡지 <경청>, 경남청년유니온, 선거 캠프 활동

"김해에서 태어났고 김해 진영읍에 살고 있는데 창원고로 고등학교 진학을 했어요. 졸업하고 창원대학교에 진학했고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어요. 영어를 잘하는 편이긴 한데 사실 과는 점수에 맞춰서 선택한 거예요.(웃음)"

진영 씨의 캠퍼스 생활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지금의 활달한 모습에서 대학 시절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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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영 씨. /서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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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재밌게 다녔어요. 저희 학년 총원이 36명이었는데 남자가 넷이었거든요. 그 속에서 과대표도 하고, 2학년 때는 총학생회 선거 치러서 이기기도 하고, 단대 집행부도 하고…. 군대는 22세에 갔고요. 학생회 생활을 열심히 했죠."

본격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거나 청년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지만 사실 좀 더 어렸을 때부터 정치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2002년에 제가 열두 살이었는데 그때 16대 대선이 있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셨죠. 집이 김해이다 보니 초등학교 선배시고, 동네 분들이 우리 동네 큰 인물 났다고 말씀하시니까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어요."

고등학교 때에는 잠시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2004년에 탄핵사태 일어나고 열린우리당이 압승했죠.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공부에 신경을 더 많이 썼어요. 그러다 광우병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같이 분노했죠. 대학 입학하고 나서는 학생회 선배들이 있으니까 집회나 이런 문화가 더 가깝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활동하기 시작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진영 씨는 따로 또 같이 활동한다. 2016년에는 경남지역 청년들이 만든 잡지 <경청>를 펴내는 데 힘을 보탰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정치와 사회문제, 청년 문제를 다루는 잡지다. 창간에 함께한 멤버들과 어울리며 지역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했다. 집회 현장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15세~39세 청년들의 젊은 노동조합 경남청년유니온 활동도 함께했다.

"경남청년유니온 참여는 대학교 4학년부터예요. 학생회 할 때부터 계속 인연이 있었고 친하기도 했어요. 근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 좀 회의감이 들었었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는데 그 당이 통합진보당이 됐잖아요. 근데 당이 박살이 난 거예요. 그렇게 회의감을 좀 느꼈었는데 청년유니온 활동은 큰 이견은 없고 생각의 교집합이 있으니까…. 이건 같이 하면 되겠다 싶어서 함께 한지는 꽤 됐는데 조합원 가입은 2015년 12월에 했어요."

진영 씨는 춤추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갖춰진 무대나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게 아니다. 진영 씨 춤을 볼 수 있는 곳은 주로 선거 유세 현장이나 집회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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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창원 의원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찍은 사진. /배진영 제공

"춤, 몸짓 같은 거 하는 걸 좋아해요. 주로 혼자 해요. 춤이면 다 춰요. 선거 유세할 때 추는 그런 춤도 추고, 걸그룹 춤도 주고요. 따로 목적이 있어서 연습을 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춤춰줄 수 있냐고 연락이 오면, 할 수 있을 때 가서 춰 드리고 그래요."

춤추는 모습이 궁금하다고 하자 진영 씨는 2012년 KBS 퀴즈대한민국(종영)에 출연해 춤을 춘 적이 있다고 했다. 영상 속에서 지금보다 더 앳된 진영 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녀시대 노래 'TAXI'에 맞춰 춤추는 모습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2012년도에 창원시 의창구 선거에서 당시 문성현 후보 선거 유세를 함께 했었는데, 캠프에서 춤추는 5명 중에 센터를 했어요.(웃음) 그때 22살이었어요. 유세 다닐 때 다른 캠프에서 춤은 저렇게 추는 거라고 그런 소리도 듣고 그랬어요.(웃음)"

청년들 무력감에 빠지지 말아야 해

진영 씨는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과 주변 친구들이 청년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만나면 다들 힘들어해요. 대학 동기들은 거의 여자친구들이라서 사회에 저보다 일찍 나가잖아요. 얼마 전 만났는데 일자리 다시 구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많이 없어요. 월급 밀렸는데도 불만 있으면 나가라고 하는, 그런 자리에서 일했다고 하더라고요. 퇴사한 지가 반년이 넘었는데 아직 월급을 못 받았데요."

화가 나는 건 이런 일이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괜히 공무원, 공무원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취직한 친구들도 있는데, 안정적인 직장을 잡은 친구들은 적어요."

청년 문제에 대응하는 청년들의 분위기는 어떨까. 혹 청년들이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조심스러운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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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당 청년위원회 발대식에서 찍은 사진. /배진영 제공

"우리가 취업이나 어떤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고는 생각 안 하거든요. 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구조나 정책 문제를 해결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투표인데, 청년들이 그게 많이 미진하잖아요."

12년 만에 20대의 총선 투표율이 60%에 육박하며 절반을 넘었지만 50~60대 투표율이 미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작년 총선만 해도 많이 올랐긴 하지만… 힘들다고만 하고 패배주의, 염세주의에 찌들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 않나 싶어요. 안타까워요. 모두가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정치인들이 청년들이 요구하는 걸 듣게 하려면 움직임을 보여야 하니까 정치에 관심 가지고 목소리 내고 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하던 날은 두 번째 월급이 들어온 날이라고 했다. 민언련에서 언론 모니터링 활동을 하는 것도 진영 씨가 해온 활동의 연장선이다.

"언론에 원래 관심이 계속 있었어요. 정치에 관심 있는 것과는 별개로요. 결정적이었던 건 세월호 구조현장에서 언론이 현장 상황과 다른 보도를 하는 것을 알고 나서예요. 그 후에는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거기 영어학원에서 세월호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잠수사를 만났어요. 그분이 언론이 제일 나쁜 놈들이래요. 구조작업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짓 기사를 다 내보냈다고요. 현장에서는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멈춰있었다고요."

그래서 언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민언련에 들어왔고 아직은 배워나가는 단계라고 했다.

"경남민언련에 자리가 비는데 제가 언론에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누가 추천을 해주셨어요. 좋았던 게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민언련 사무총장님이 나오셔서 '종편 때찌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요. 종편의 잘못된 보도, 악의적인 보도들을 조목조목 알리는 프로젝트였어요.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고, 일한 지 이제 두 달 됐어요. 한 달 정도 인수인계 기간이었고 아직 배우고 있고요. 정해진 기간 없이 하고 싶을 때까지는 열심히 할 거예요."

팟캐스트 <우리가 남이가>에서 청년 목소리를 낸다

<우리가 남이가>를 꾸준히 들어온 애청자라면 진영 씨 목소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팟캐스트에 종종 참여했던 진영 씨는 올해 1월부터 다른 패널들과 돌아가며 <우리가 남이가>를 채운다. 어떻게 <우리가 남이가>와 함께 하게 되었을까.

"2016년 2월에 민주당 선거캠프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총선 전 청년당원으로서 선거 준비하고 있을 때였는데 같이 잡지 <경청> 하는 누나가 있어요. 류설아 씨라고요. <경청> 발간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가 남이가> 게스트로 누나가 참여했는데 저도 따라갔어요. 처음 녹음을 하고 나서, 한 번 더 게스트로 나갔다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같이 하고 있어요."

시작은 둘이 했지만 회가 더해지면서 패널이 한 명이 더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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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영 씨. / 서정인 기자

"'겸손'이라는 닉네임 쓰는 김민철이라는 동생이 있어요. 작년에 처음 만났는데 같이 하는 형님이 소개해주셔서 알게 됐어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를 잘 알더라고요. 경제나 숫자 같은 거요.(웃음) 백만 명이 모인 2016년 민중총궐기 11월 12일 날에 가슴이 너무 벅차서 우리 20대 둘이서 녹음을 해보자고 말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정경유착'이라고 이름 짓고 하게 됐어요. 이동준이라는 다른 한 분은 저랑 동갑인데 게스트로 나오셨었어요. 근데 마음도 잘 맞고 다방면으로 지식이 있으시더라고요."

지난 5월 24일 녹음에서는 설전을 벌였다기에 집중해서 들어보았다.

"대선 바로 끝나고 한 녹음이었어요. 문 대통령 지지자들 얘기가 나왔는데 너무 설전을 심하게 한 거예요. 서로 욕만 안 했지.(웃음)"

진영 씨는 팟캐스트 활동이 무척 재밌다고 했다. 가감 없이 내 목소리, 내 생각을 내보일 수 있는 창구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전 재밌어요. 제 생각을 말할 데가 별로 없으니까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고, 욕도 해도 되고요. 홍준표 욕을 제일 많이 했어요.(웃음)"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영 씨는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나중에 어떤 다른 목표가 생기든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민언련에서 일을 하고 청년유니온 조합원으로서 활동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청년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회사 이력서를 쓰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행보에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대선 전에 당에 있으니까 임명장 같은 걸 많이 받았어요.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직인이 찍혀있거든요. 그러니까 부모님은 우리 아들이 뭔가 하는가 보다….(웃음) 그렇게 생각하시고 크게 터치는 안 하세요. 그래도 가끔 엄마가 '공무원은 아예 생각 없나?' 하시면 제가 표정이 안 좋아져요. 그럼 '그래 니 하고 싶은 거 하면 됐지' 하시긴 하는데 아쉬움은 있으신가 봐요. 아버지도 그렇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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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영 씨. / 서정인 기자

인터뷰 중 진영 씨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저희 세대가 과거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낫고 평화롭잖아요. 근데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 중 실업률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거기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전쟁 겪은 세대는 전쟁 끝났으니 괜찮아질 거야, 유신과 독재를 겪은 세대는 민주주의가 왔으니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기다리는 시대가 있었잖아요. 근데 저희 세대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했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 계속 생기고 있잖아요. 최저 임금도 2020년까지 만 원으로 올려준다고 대통령이 약속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재판을 받고 있잖아요. 바라는 게 있다면… 굳이 꿈꾸기 싫으면 꿈꾸지 말고,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뭔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래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우리 노력 여하에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힘냈으면 좋겠어요."

당분간 경남민언련에서 언론 감시과 비판을 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방향은 정해두지 않았다. 일단은 진영 씨의 목소리를 팟캐스트에서 오랫동안 듣고 싶다. 소신 있는 그의 목소리는 분명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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