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주기로 새로운 일 도전…참 재미있는 인생이었죠”

낯이 익은 독자가 꽤 있을 것 같다. 진해시민포럼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했고 <경남도민일보>에도 여러 차례 얼굴을 비쳤던 바로 그 '이춘모'가 맞다. 현재는 베비라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서울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이춘모(70) 씨. 그는 "돌아보면 참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 10년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52년 살아

Q. 고향이 진해 맞나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태어난 곳은 충북 제천입니다. 1965년 해군에 입대하면서 진해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해군에 근무하면서 우연인지 인연인지 동향인 아내를 만나 진해서 결혼하고 52년을 진해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주말마다 왔다 갔다 하고 있구요."

Q. 진해에서는 유아복 브랜드인 베비라 매장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정당·시민운동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한 것으로 압니다.

"진해사랑시민모임, 진해시민포럼 활동을 하면서 마산·창원·진해 통합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고 그랬는데 그보다는 베비라 매장을 운영하게 된 사연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취업을 목적으로 원주공업기술학교에서 사진을 배웠는데 그 인연으로 해군에서도 사진병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1973년 제대하면서 카메라도 없이 용감하게 진해역전에 창조사라는 사진관을 차리게 됐죠. 그때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매월 촬영해 기록해주는 것이었어요. 요즘은 많이 하지만 당시는 획기적이었죠. 자연히 아이들과 부모를 많이 상대하다 보니 유아복, 유아용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다 차린 게 베비라 진해대리점이었죠. 그때가 1981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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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모 베비라협동조합 이사장. / 고동우 기자

Q. 그럼 사진관은 그만두신 건가요?

"아닙니다. 3년 정도 사진관과 유아백화점(베비라 대리점 확장)을 같이 운영하다 사진관은 개업 10년 만에 지인한테 넘겼죠. 유아백화점 운영에 집중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어요. 베비라가족회의라는 소비자조직도 만들고 매월 영업 안내 관련 타블로이드판 소식지도 발행하고. 장사가 정말 잘됐습니다. 1980년대 베이비붐이 일었을 때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셔터를 내리고 장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Q.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군요.

"컴퓨터 유통업을 또 10년 정도 했습니다. 베비라 소식지를 보내는데 매월 1850명 주소를 직접 손으로 쓰는 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자동 출력을 고민했고 우연히 퍼스널 컴퓨터가 새로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죠. 거기서 컴퓨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습니다. 컴퓨터의 '컴' 자도 모르던 나는 결국 또 삼성컴퓨터 진해대리점 사업을 1992년 시작합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전 1970년대는 아기 사진 전문 사진관을 운영했고 그 인연으로 1980년대 10년은 다시 유아복·유아용품 전문점을, 또 그와 관련한 인연으로 컴퓨터 사업을 1990년대 10년 동안 한 것입니다. 매 10년을 주기로 엉뚱하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뭔가 이루어내는 과정이 지금 내가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삶이었습니다."

사진, 아동용품 매장, 컴퓨터 대리점, 협동조합···

Q. 지금 또 새로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베비라협동조합이라는.

"마지막 10년이 될지 모르겠네요. 베비라 대리점을 인연으로 협동조합 일을,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거죠. 한때 매출이 900억 원이 넘는 중견기업이었던 베비라는 지난 2011년 기업 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갑자기 파산하게 됩니다. 전국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던 저 같은 점주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신제품 공급 중단, 본사에 제공한 부동산 담보 문제, 재고 처리 등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저는 이들을 대변해 뭔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성한 게 베비라전문점협의회였죠. 법률도 잘 모르는 제가 법률 전문가들을 상대로 법률 투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다행히 회사 재고자산을 인수해 대리점주들의 채무를 일부 탕감하는 등 성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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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진해 장복산 휴게소에서 '베비라 가족회의' 창립식을 열고 있는 이춘모(왼쪽) 씨. 오른쪽은 코미디언 배일집 씨다. / 이춘모 씨 제공

Q. 협동조합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타이밍이 맞았죠. 신상품을 생산해 대리점에 공급해야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시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012년 말이었어요. 협동조합 방식으로 신제품을 공동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각 대리점주에게 설립을 제안해 2013년 3월 베비라협동조합을 만들게 됩니다. 제가 서울에 정착하게 된 시점도 그때였습니다. 막상 조합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진해를 오가며 조합 이사장 직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죠. 과거 베비라 본사에 납품하던 생산업체 사무실이 서울 송파구에 있었던 인연으로 저도 이쪽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Q. 실례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연세가 적지 않습니다. 그 연세에 새로운 일을, 그것도 먼 타지에서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들이 수원에 살고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전 재미있습니다. 과거 사진사로 일할 때, 컴퓨터 관련 일할 때, 유아백화점을 할 때 늘 그랬지만 나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고, 누군가 저를 인정해준다는 게 전 좋았습니다. 협동조합 일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끄는 대로 되니까,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고 인정받고 그러니까. '이사장님만 믿는다' 그러면 전 참 뿌듯하고 힘이 생겨요. 돌아보면 돈이 주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유아백화점이든 뭐든 한창 잘될 때 그만두곤 했으니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뭔가 제대로 이루어내는 그 자체가 제 인생 같습니다."

민주적 의사 결정, 정보 공유 등 협동조합 장점 많아

Q. 그래서 협동조합 실험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나요?

"기대만큼은 아닙니다. 애초 58개점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는데 지금 55개점이니 현상 유지하는 수준이죠. 새로운 거래처 확보를 위해 노력했지만 경제 사정이 너무 안 좋고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도 아직 미미합니다. 지금은 문 안 닫고 버티면 대단한 겁니다. 협동조합에 세제 혜택 등을 줄 수 있는 제도 개선도 필요합니다."

Q. 협동조합만의 장점을 설명해주십시오.

"분명 작은 힘을 합해서 협동하면 한 사람이 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베비라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생산·판매까지 대리점 주인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해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사장이든 조합원이든 누구든 1인 1표입니다. 인터넷 비공개카페를 통해 모든 사안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토론·결정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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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모 베비라협동조합 이사장. / 고동우 기자

Q. 서울에서는 진해에서 그랬듯 다른 사회 활동, 대외 활동은 안하십니까.

"정치·시민운동은 아니고 송파사회적경제단체협의회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조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것인데 자주 만나 토론도 하고 강의도 하고 그럽니다. 지난 연말에는 촛불집회에도 종종 나갔죠.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한 4번인가 나갔던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삶의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아직은 '자영업자에게 은퇴는 없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 10년 내에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적 경제조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어차피 80세가 넘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은퇴를 생각하게 되겠죠. 만일 그렇게 은퇴한다 하더라도 내 삶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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