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트럭 몰며 전국 돌아다녀…커피도 팔고 작은 모임도 열어
함께 이야기 나누며 추억 한 모금, 여행길 만난 사람 담은 책 내기도

커피 트럭 '풍만이'를 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만드는 이담(52·본명 이종진) 씨. 그는 단순한 커피 장수가 아니다. '바람커피로드'라고 이름 붙인 커피 여행을 하는 '커피 방랑자'다. 그가 찾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커피 모임이 열린다. 그가 내린 커피를 통해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진다. 어느새 5년째에 접어들었다는 이 여행이 언제 마침표를 찍을지는 그도 잘 모른다. 최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열린 커피 모임에서 그의 커피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커피 여행길에 오르다

"콜롬비아 커피는 고소하고 달콤해요. 생산량이 많진 않아도 맛있는 커피라고 소문나 있어요. 커피의 끝 맛은 마치 밀크 초콜릿 같죠. 단맛과 신맛도 적절하고 향도 적당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요."

이담 씨가 커피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손수 콜롬비아 커피를 따라 주며 말한다.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 커피란다. 커피를 볶은 지 약 10년이 되었다는 그의 손동작에서 그동안 쌓인 내공이 엿보였다. 먼저 커피 향을 맡고 한 모금 마셔본다. 그의 말대로 쓰지도 떫지도 않고 고소한 맛이 난다.

2013년 7월, 제주도 산천단 '바람카페'에서 커피를 만들던 그가 어느 날 커피 트럭을 몰고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장소에도 가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 위해서였다. 노란 커피 트럭 풍만이가 '바람처럼 떠나는' 그의 여행에 일조했다. 크기는 작아도 로스팅 등 커피를 볶을 수 있는 장비를 다 갖추고 있다. 커피 트럭 안에서 로스팅도 하고 커피도 내리는 그는 스스로 '차내수공업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씨가 단순히 푸드 트럭에서 커피장사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에게 푸드 트럭 창업을 하려면 얼마가 드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면 사실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놀러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했죠. 제 여행은 길거리 장사와는 좀 달랐으니까요."

커피를 내리고 있는 커피 여행자 이담 씨. /이서후 기자

커피를 만든 지는 10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 씨는 한 컴퓨터 월간잡지사에서 일했다. 2000년에는 사업을 하나 시작했는데 잘 안 되었다. 돈은 없었지만 시간이 많았다는 그는 지난 2003년, 길게 여행이나 다녀올 겸 책도 한 번 써 볼 겸 제주도에 갔다. 여행이 아니라 정착해 살다 보니 제주도 진짜 풍경에 눈을 떴다. 그대로 눌러앉아 10년을 살았다. 당시 제주도에는 커피를 제대로 마실 만한 카페가 마땅히 없었다. 몇 달을 지내고 나니 맛있는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직접 볶아서 마시기로 했다.

"유튜브 영상과 커피 관련 서적을 보며 독학했어요. 커피 동호회에도 나갔죠. 그러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땐 커피를 잘 아는 '커피 고수'를 찾아 궁금한 것을 물었어요. 커피를 배우는 건 그리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고, 연습을 과하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죠. 저에게 남다른 감각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인터넷으로 커피 생두를 주문해 커피를 만든다. 그가 운영하는 '두근두근 커피클럽'의 회원이 되면 커피 원두를 받아볼 수도 있다. 회원 수는 10명을 넘지 않는다. 앞으로 로스팅 기계를 바꾸면 100명 가까이로도 늘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커피 만들고파

이 씨는 5년 동안 커피 트럭을 몰며 전국을 여행했다. 단순하게 길에서 커피를 팔기도 했고, 가평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나 강원대학교 취업박람회 등 지역 행사를 찾기도 했다. 요즘엔 무작정 떠나지는 않고 그를 초대하는 곳 위주로 커피 모임을 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일정이 빡빡하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함께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눈다. 커피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괜찮다. 때로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여행을 한 지 3년째 되던 해 가을이었어요. 심신이 지치고 힘들더라고요. 내가 왜 커피를 만들고 있는지 하는 고민에 빠졌어요. 그때 처음 풍만이를 두고 홀로 몽골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막상 몽골에 가니 인터넷도 안 되고 할 일이 없었어요. 낮에는 노트에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고, 밤에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구경했지요." 이 씨는 커피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몽골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려 대접했다. 반응이 좋았다. "남자들은 도시에 나가 즉석커피라도 마실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커피를 거의 처음 접했을 거예요. 아마 이런 핸드드립 커피는 처음이었겠죠. 사람들이 제 커피를 맛있게 마셨는데, 그 표정이 너무 좋더라고요. 아, 커피는 그냥 즐겁게 만들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날 이후로 제 커피의 맛이 달라졌을 거예요."

모임 참가자에게 커피를 따르고 있다. /이서후 기자

향이 살아있고 마실 때 거부감이 없는 커피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피다. 마시기 편하도록 농도도 맞추어야 한다. 커피를 내리는 데는 변수가 많다. 원두 굵기와 모양, 물 온도, 커피를 내리는 속도 등 모든 것이 맛에 영향을 준다. 그의 목표는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커피 전문점은 기본적으로 실내장식보다 커피 맛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엔 바리스타, 로스팅 과정을 3개월 정도만 배우고 가게를 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 가게를 차리면 유지가 힘들 거예요. 대부분 커피 맛을 잘 모를 거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맛있는 커피와 맛없는 커피, 싼 커피와 비싼 커피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거든요."

여름과 겨울에는 제주도에 있는 은둔지 '커피 동굴'에서 커피를 내리며 책을 썼다. 그가 얼마 전 낸 <바람커피로드>라는 책에는 지난 5년간 커피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직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래도 만약 정착하게 된다면 그곳이 제주도 선흘리에 있는 바람도서관 자리면 좋겠어요. 공간도 넓고 마당도 있는데다 용암 동굴이 있는 자연문화유산 지역이라 주변이 크게 개발될 일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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