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일심교' 머무는 곳마다 역사·의미 가득한 통도사
'모든 것 둘 아닌 하나' 일주문서 대웅전까지 새긴 가르침

새벽께 비가 내렸다. 갈라진 토양 사이로 찔끔 스며든 빗물이 지독한 목마름에 얼만큼의 위안이 될는지.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은 종일 짙은 회색빛이다. 모처럼 걷는 날 햇빛이 없어 다행이지만, 비를 쏟아낼까 말까 저울질하는 하늘의 모양새가 밉상이다.

통도사 매표소가 있는 곳에서 걸음을 시작한다. 왼쪽 길은 차가 달리고, 오른쪽 길은 사람이 걷는다.

소나무 숲에 첫발을 디디자 솔향이 반긴다. 빗물을 머금어 향은 배로 깊다. 한걸음에 모든 위안을 얻은 기분이다.

접시꽃.

우람한 소나무 사이로 접시꽃 한 송이 생명을 피워낸다. 고귀한 생명은 하루 날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모습이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도종환 시 '접시꽃 당신'으로 화답하며 솔길을 음미한다. 계곡은 마치 거울인 듯, 소나무 형상을 아로새긴다.

잠시 헤어졌던 길은 청류교를 지나 일주문에서 다시 만난다.

통도사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 일주문 현판에 쓰인 금빛 글씨는 '영취산(또는 영축산 ·靈鷲山 ) 통도사'다.

일주문.

절을 품은 산의 이름은 영축산. 본래 취서산이라 불린 그 산이다. 산 정상 바위가 독수리 부리 같다 하여 취서산, 신령한 독수리가 산다 하여 영취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영취산은 인도 옛 마가다국 산으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파한 곳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이를 품은 산.

현판을 쓴 흥선대원군이 왜 취서산, 영축산이 아니라 '영취산'이라 하였는지 그 까닭을 알 것도 같다.

일주문 옆을 흐르는 물길 위로 돌다리가 있다. '삼성반월교'는 무지개 세 개를 안은 모습이다. 이름에 쓰인 '삼성반월(三星半月)'은 '마음 심(心)' 자를 풀어쓴 뜻이라고.

세 개의 점과 반월 형상의 한 획을 다시 하나로 모으면, 곧 '일심교'다.

'깨끗한 하나의 마음으로 건너야 하는 다리'라는 의미. 다리 이름 하나에도 깊은 뜻이 있음에 탄복한다.

일주문 옆을 흐르는 물길 위로 놓인 '삼성반월교'.

통도사 가람배치(사찰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는 통도사 상징인 금강계단을 정점으로 한다. 금강계단 불사리탑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신 부처의 정골사리를 봉안했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으니, 대웅전에는 정교한 불단만 있을 뿐 불상은 봉안하지 않았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하로전에 다다른다.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 영역으로, 세 개 불전과 만세루가 삼층석탑을 둘러싼 형태다.

하로전 중심 건물은 영산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석가여래 일생을 여덟 가지 사실로 정리한 팔상탱화가 있다. 보물 제1826호.

목조 사천왕이 각기 다른 형상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천왕문을 지나 중로전으로 향하는 길에 불이문이 있다.

천왕문.

'불이(不二)', 즉 불법의 세계는 둘이 아닌 경지. 생과 사, 만남과 이별, 당신과 나라는 상대적인 모든 것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

궁극적으로 부처와 중생은 다르지 않다는 뜻을 담은 불이문은 '해탈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경내 마지막 문 앞에서 이렇듯 세상 모든 것은 하나라는 깨달음에 한발 가까워진다. 고요한 경내 한쪽 벽면에 능소화가 보인다. '그리움'이라는 꽃말 때문인지, 둘이 아닌 하나였던 소중한 이들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아미타불 정토인 극락에서 편히 계실지.

'이렇게/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당신이 보고 싶어/내 마음이 흔들립니다//옆에 있는 나무들에게/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나도 모르게/가지를 뻗어 그리움이/자꾸자꾸 올라갑니다(이해인 시 '능소화 연가' 한 대목)'

이날 걸은 거리 1.8㎞. 3442보.

능소화.
대웅전.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