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고정관념 깨트리는 유쾌한 수다
방송인·교수·영화감독 등
6명 패널 사회적 이슈 다뤄
인권침해 사례자 인터뷰도

월요일 밤 TV 채널을 돌리다 멈췄다. EBS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지금까지 보아왔던 일반적인 토크쇼처럼 보인다. 그런데 주제가 범상치 않다. '저런 주제를 다룰 수 있다니'. 채널을 고정하고 방송을 흥미롭게 시청했다.

방송인, 교수, 영화감독 등 6명이 이슈를 두고 펼치는 수다는 유쾌하고 의미도 있었다.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 = 지난 3월부터 매주 월요일 밤 11시 35분에 진행되는 <까칠남녀>는 지금까지 14회 방영됐다.

기획의도가 여느 프로그램과 다르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성차별 이슈를 다루겠다고 밝혔다.

가정, 학교, 직장, 연인, 부부, 부모와 자식, 10대부터 노인까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유쾌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겠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국내 최초의 젠더 토크쇼'로 대한민국의 젠더 감수성(사회적 성별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성차별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민감성)을 높이겠다는 당찬 포부도 전했다.

실제로 방송은 기획의도에 맞춰서 민감한 이슈들을 비켜가지 않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하기 쉽지 않은 주제를 서슴없이 던졌다.

예술과 외설, 노브라, 생리, 데이트 강간, 미혼과 비혼, 군대, 자위, 맘충, 시선 폭력, 김치녀, 졸혼, 피임, 성역할 고정관념 등을 다뤘다.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 주제에 대해 패널들은 저마다 경험과 생각을 전하면서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26일 방영한 주제는 '예술과 외설'. /캡처

◇짜임새 있는 구성 = 박미선, 서유리 방송인, 정영진 시사평론가, 은하선 <이기적인 섹스>의 저자, 서민 단국대 교수, 봉만대 영화감독이 고정 패널로 3:3 남녀 성비를 맞춘다. 여기에다 이현재 여성 철학자,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격주로 출연한다. 패널들은 일반적인 통념을 언급하고, 여성 전문가들은 여기에다 전문성을 더한 코멘트로 이슈를 더 들여야볼 수 있게 돕는다.

방송은 패널 입장에서는 난처하고 진지할 수 있는 주제에 흥미롭게 접근한다. 사안별로 사례를 들고 출연자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해서 몰입도를 높였다.

지난 19일 '나, 노브라야' 편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실제로 '노 브라(브래지어)'로 방송을 진행했고, 남성 출연자는 거꾸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체험을 했다.

이슈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기 전 'X의 방'이라는 것을 만들어 더 쉽게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지난 12일 '피 땀 눈물' 편에서는 '생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여기에 패널이 들어서서 무엇인지 살펴보게 했다. 생리통으로 인한 신음 듣기, 생리 주기 행동 체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관련 사례자 인터뷰는 이슈를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5월 1일 '벌레가 된 엄마, 맘충' 편에서는 아이 엄마 인터뷰, 6월 5일 '라면 먹고 갈래' 편에서는 데이트 강간 피해자 인터뷰 등이 담겼다.

◇가볍고 피상적이지만 학습 효과 = 방송은 사안별 주제에 대한 가볍고 피상적인 접근 방식 탓에 관련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 패널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언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오히려 더 친숙하게 주제를 '내 이야기'로 듣게 하는 효과가 크다. ○× 퀴즈로 그동안 가졌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치게도 하고, 방송 마지막에 패널이 그날의 주제를 한 줄 평('마지막 까칠한 톡, 까톡')으로 정리하는 것을 들으며 주제를 되짚을 수 있게 한다.

방송을 보는 이도, 방송에 출연하는 이도 다시 한 번 성차별 이슈에 대해 고민을 해 볼 수 있게 한다. 지난 26일 '봉 감독의 고민 열차' 편에서는 봉만대 감독이 방송 출연 이후 젠더 이슈를 고민하게 되면서 창작 과정에서 젠더적 관점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돼 창작이 더 어려워졌다는 하소연(?)을 다뤘다.

방송 진행자, 출연자 모두 방송 이후 예전과 자신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렇다. 젠더 감수성은 모두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방송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음 주 '낙태' 편도 생각해 볼 많은 과제를 던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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