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진흥회 한지붕 두 행사 눈앞
각각 한 걸음씩 물러서서 해답 찾아야

거창군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지역문화지표 개발 및 시범적용 연구'에서 문화지수가 0.115로 전국 85개 군지역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문화향유 욕구가 높은 지역이다. 이 가운데 주력상품이 바로 '거창국제연극제'라고 하겠다. 대중성이 떨어지는 연극이라는 장르를 이 정도 문화상품으로 키운 것은 초창기부터 열정을 바쳐 온 몇몇 연극인들의 공이 절대적이다.

거창군 대표축제이자 문화적 브랜드로 성장하던 연극제가 언제부턴가 의회와 행정 감시를 벗어난 채 상급기관의 감사와 사법기관의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연극제를 주관해 오던 '거창국제연극제 육성진흥회'의 신·구 집행부 간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등 내분이 불거지고 불투명한 보조금 집행 문제 등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전국에 망신살이 뻗치기도 했다.

급기야 거창군의회는 2016년 예산을 심의하면서 연극제를 민간단체에 맡기지 말고 군에서 직접 시행하라는 조건을 달기에 이르자 양동인 군수는 국제연극제에 대한 예산지원을 잠정 중단하고 문화재단 설립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거창문화재단은 회계시스템을 도입해 예산집행 투명성을 확보하고 민간주도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함으로써 지역문화예술 정책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출범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때까지 거창국제연극제를 이끌어 온 진흥회 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발이 시작됐고, 지난 13일부터 열린 군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명분을 찾던 진흥회 측은 "문화재단과 공동 개최 방안을 제시한 후 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민간이 키워 온 거창국제연극제를 강탈하려 한다"며 연신 언론과 SNS 등을 통해 군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거창군은 "진흥회 측이 겉으로는 문화재단과 공동 개최를 대안으로 내놓았지만 실질적 주도권을 그대로 행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자신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파행을 군에 떠넘기려는 얄팍한 술책이자 군민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격앙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문화재단이나 진흥회 어느 한쪽이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올해 거창국제연극제는 한 지붕 아래 두 개 대회가 열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이상재.jpg

상황을 지켜보는 군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문화재단을 통한 군의 일방적 행보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분란의 실마리를 제공한 진흥회의 움직임 또한 결국 기존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불과하다는 질타도 적지 않다. 집안싸움이 계속된다면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 온 거창국제연극제의 이름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고 결국 자멸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최종 정답은 언젠가 군민이 내놓게 되겠지만 그전에 두 주체가 한 걸음 물러서 진지한 자성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먼저 해답을 내놓았으면 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