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렬 전 고성군수가 말하는 '대한민국 5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결합 4차 혁명'노동시장 파괴·양극화 우려
"생명산업 기반 5차 혁명, 인간성 회복·국민화합 지향"

'4차 산업혁명'은 짧은 시간 우리 사회 곳곳에 각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개념조차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많다. 유독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는 시선도 있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은 장밋빛 아닌 잿빛'이라며, 이를 뛰어넘는 '5차 산업혁명 준비'를 주장하는 이가 있다. 이학렬(65) 전 고성군수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는 사라지고 사회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생명산업을 중심에 둔 5차 산업혁명이 이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한민국 5차 산업혁명 전도사'를 자처한 이 전 군수를 28일 만났다.

'4차 산업혁명'은 지난 2016년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다뤄지며 이슈화됐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3차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디지털·생물학·물리학 등을 융합하는 기술혁명"이라고 정의했다. 3차 산업혁명에서 이룬 자동화·대량생산에 인공지능을 결합한 산업이라는 개념이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못지않게 앞으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지난 대선 때 화두로 떠올랐다. 대선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 속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고 외쳤다. 현재 문재인 새 정부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오는 8월 출범할 예정이다.

이학렬 전 고성군수가 28일 경남도민일보를 방문해 '대한민국 5차 산업혁명'에 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이학렬 전 군수는 이러한 분위기에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일자리' '기회 균등' '미래 먹거리' '경제 민주화' 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전 군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현실의 사물들이 지능을 갖게 되고, 이것이 가상세계와 연결, 생산·서비스의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지도록 하는 새로운 산업사회"라고 규정했다. 물론 사회·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은 향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고, 특히 '노동시장 붕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전 군수는 "자동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면서 저기술·저임금 노동자와 고기술·고임금 노동자 간 격차가 커지게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일자리 감소와 부의 편중으로 양극화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삶의 형태는 편리해지지만, 삶의 질은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문제점을 뛰어넘을 뭔가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곧 '5차 산업혁명'이다. 이는 1차 농수산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을 결합한 '6차 산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학렬 전 고성군수가 지난 3월 출간한 〈대한민국의 5차 산업혁명〉. /경남도민일보 DB

그가 정의하는 '5차 산업혁명'은 '동물·식물·곤충·미생물·종자·유전자·기능성식품·환경·물 등과 같은 생명산업(LT·Life Technology)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 정도로 요약된다. 생명산업이 성장하면 대내적으로 사회적 재화를 고루 나눠 가질 수 있고, 대외적으로 식량·에너지·환경·의약품 분야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생명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궁무진한 미개척 분야 △고부가 가치 존재 △풍부한 자원 보유국 △이념·지역·계층 갈등 없는 국민화합 산업 △대규모 일자리 창출 가능성 등 때문이다.

이 군수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우선 '미개척 분야'에서는 지구상 식물 30만 종 가운데 2%가량만 성분·기능 연구가 이뤄졌고, 나머지 98%는 미지 세계로 남아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고부가 가치'에서는 토마토·파프리카 종자 1g은 금 1g 가격보다 2~3배 높다는 점을 들었다. '자원 보유'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인도에 이어 세계 6번째임을 강조했다. '국민화합' 측면은 환경·농업을 바탕에 둔 산업은 갈등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이 전 군수는 특히 일자리 창출 부분을 크게 기대했다. 그 근거로 "첫 번째는 미개척 분야가 많아 개발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두뇌와 손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군수는 "5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되찾고,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그의 고민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려→5차 산업혁명 지금부터 준비→생명산업이 그 중심 역할'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이학렬 군수가 '5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나선 까닭은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방법"

이학렬 전 고성군수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해군사관학교 교수 등으로 재직하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고성군정을 이끌었다.

재임 때 고성공룡세계엑스포를 정착하며 '공룡 군수' 별칭을 얻었다. 또 하나 '생명환경농업 군수'로도 불렸다. 지금 주창하고 있는 '5차 산업혁명'과 연결된다.

이 전 군수는 당시 고성군에 생명환경농업을 접목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퇴비 혹은 토착미생물·천연영양제 등을 공급해 재배하는 방식이다. 친환경농업과는 또 다르다. 단적으로 친환경농업은 환경친화적 농약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 사용하지만, 생명환경농업은 천연농약을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즉,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대신 저비용·고효율로 재배할 수 있다. 농약 유혹에 갇혀있던 기존 농업 틀을 깼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08년 10월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 들녘에서 열린 생명환경농업 벼 첫수확 큰잔치에서 당시 이학렬 고성군수가 콤바인에 탑승해 벼베기 체험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또한 축사에도 생명환경 개념을 도입해 기존 밀폐형 아닌 개방형으로 바꿨다. 전국 모든 축사가 개방형으로 전환하면 가축 저항력 강화로 구제역·AI(조류인플루엔자) 등의 질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전 군수는 이러한 이력에 한때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생명환경농업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전 군수는 2009년 이명박 대통령 고성 방문 때를 예로 들었다. 자신은 이 대통령을 생명환경연구소로 안내하기 원했지만, "생명환경농업은 검증되지 않은 농법"이라는 청와대 관계자 고집에 결국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 군수는 "생명환경농업이 전국적으로 체계화·조직화·규모화되면 이 시대 신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한민국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여전히 말한다. 이를 위해 생명환경농업공사·생명산업부 신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러한 신념이 지금의 '생명산업(LT) 중심의 5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5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이 전 군수는 이 대목에서 1960년대 '산아제한 운동'을 예로 들었다. 이 전 군수는 "나라에서는 당시 출산율을 낮추지 못하면 100년 후 인구가 6억 명까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부부당 평균 자녀는 1.13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당시 산아제한에 대해 그 누구도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너도나도 아무 대책 없이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나 혼자라도 문제점을 짚고, 더불어 잘살 수 있는 5차 산업혁명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 군수는 이러한 견해를 <대한민국의 5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으로 담아 지난 3월 출간했고, 현재 개정판 작업 중이다. 그는 '생명산업을 바탕으로 한 5차 산업혁명'을 계속 설파하고 현실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굳게 드러냈다. 나라에서 역할을 맡기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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